구봉서, 시대의 아픔을 '웃음'으로…코미디계 거인의 발자취

입력 : 2016-08-29 08:41:19 수정 : 2016-08-29 08: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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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먼저~ 아우 먼저~"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거목 구봉서가 지난 27일 오전 향년 90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배삼룡과 서영춘 등과 더불어 한국 코미디를 개척하고 한 서린 시대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주인공이다.
 
구봉서의 평생은 대체로 굴곡진 삶이 없는 흐르는 물과도 같았다. 구봉서는 1926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서울로 이사와 대동 상업고등학교와 일본 동양음악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이후 '태평양가극단'에 들어가 악사로 활동했던 그는 어느 날 대타로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됐는데, 이때 애드리브 위주의 즉흥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 코믹영화의 전성기를 연 개척자
 
1950년대 후반부터는 충무로에 진출해 코믹 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수학여행',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가도', '번지수가 틀렸네요', '염통에 털난 사나이', '오부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출세작이 된 '오부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구봉서는 극 중 역할이었던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1960년 TV 시대가 개막되면서다. MBC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에 고정 출연하면서 국민 스타로 발돋음했다.
 
◆ "거북이와 두루미" 유행어 등 창출, 국민스타 등극
 
구봉서 하면 으레 연상되는 '거북이와 두루미~'라는 유행어도 이때 탄생했다. 또 동양방송(TBC) TV 프로그램 '쇼쇼쇼'에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를 이뤄 코미디를 선보였는데, 이를 계기로 라면 TV 광고에 등장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구봉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술을 못 마시던 코미디언 서영춘을 끌고 다니며 술집을 들락날락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던 구봉서는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술을 끊었다. 이후 서영춘이 음주로 인한 간암 발병으로 59세에 세상을 뜨자, 구봉서는 자신이 서영춘을 죽였다며 슬퍼하기도 했다.
 
서영춘이 죽은 다음날은 구봉서의 환갑날. 구봉서는 "전날 영춘이가 죽는 바람에 다음날 자식들이 환갑 잔치를 열어줬지만 웃음이 안나오더라"며 서영춘의 죽음을 자책하며 평생의 짐으로 안고 살았다.
 
◆ 국민과 웃고 울고  "시대의 진정한 광대, 고이 가소서"
  
그는 60년 이상 희극인으로 살면서 사회와 연예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구봉서는 평생을 코미디언으로 살면서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매를 맞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구봉서는 배삼룡, 서영춘과 함께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온 국민에게 희망을 준  시대의 진정한 광대였다.

이동훈 기자 l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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