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통해 현재의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또 생생한 오늘의 언어가 아닌 살짝 빗겨난 시기가 감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많아요.”
최근 ‘암살’ ‘동주’ ‘아가씨’ ‘덕혜옹주’ 등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연이어 극장가에 걸리고 있다. 여기에 김지운 감독도 합류했다.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인 ‘밀정’이 바로 그것이다. 앞선 작품들이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하더라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지운 감독은 본보와 인터뷰에서 “이 나이에 나라 걱정하는 영화 한 편 만들었다”고 농담을 건네면서 “감독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든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놈놈놈’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정립했던 그는 시대적 배경에 스파이를 버무렸고, 이를 통해 우려를 잠재웠다.
김 감독은 “내가 좋아했던 스파이 걸작들이 가지고 있는 기품 있는 오락성, 묵직한 남자들의 이야기, 냉혹한 세계에 대한 밀도 높은 조망 등을 시대에 맞게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인장을 곳곳에 새기면서 차별화를 분명히 했다. 그는 “장르를 매번 바꾸지만, 그걸 관통하는 나만의 인장이 있다”며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대사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게 70이라면, 나머지 30은 연기, 조명, 촬영, 음악, 편집 등으로 강화하고 완성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를 위해 신경 썼던 게 음악과 룩(색감)이다. 김 감독은 “이 시대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음악과 룩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시대가 주는 막중한 압박감 때문에 전형적인 것에서 탈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룩도 되도록 브라운을 걷어내고 블루와 블랙 등 차가운 색을 주조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대를 다뤘지만, 감독들만의 방식으로 그 시대를 특색 있게 보여주는 거죠. 주제가 가지고 있는 압박 못지않게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하고자 공을 들였죠.”
그가 생각했던 건 ‘콜드 누아르’다. 단어 그대로, 냉철하고 차가운 느낌의 누아르 영화를 꿈꿨던 것. 하지만, 생각대로 쉽게 풀리진 않았다. 결국엔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유다.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것을 영화적으로라도 하고 싶었죠. 그렇게 결말로 가는 사이 변곡점이 일어나는데 그 부분을 뜨겁게 하지 않고선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두 개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했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봉합인 셈이죠.”
■ 송강호, 무서운 인간...공유, 싸움이 되는 배우
‘밀정’의 재미는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독립군과 일본 앞잡이를 오가는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와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 역의 공유를 비롯해 특별출연한 박희순과 이병헌까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에 대해 “1차 편집본을 보고 나서 딱 두 장면 넣어달라고 하더라. 결국 다 넣게 됐다”며 “무서운 인간이다. 편집까지 감독 머리 위에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계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이렇게 무서운 송강호를 상대해야 할 배우로는 공유를 선택했다. 그는 “송강호와 연기로 팽팽한 싸움을 해야 하는 역할이라 압박감이 없을 순 없다”면서도 “현장에서 싸움이 되는 배우가 됐다는 걸 느꼈다. 결과적으로 또 한 번의 도약에 성공했다”고 만족해했다.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도 눈에 띄는 인물이다. 강렬한 표정과 행동, 말투가 그 시대 경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김 감독은 “사실 오디션 볼 때 훨씬 더 하시모토 같다고 생각하는 배우도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엄태구를 선택한 건 연기를 보는 데 스파크가 튀는 순간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곧바로 “미래 한국 영화의 어떤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칭찬이 더해졌다.
또 주연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박희순 이병헌에 대해서는 “신뢰감에서 전혀 이의가 없는 배우”라며 “두 배우가 압도적으로 표현해줬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강민지 기자
황성운 기자 jab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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