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0주년 당신을 응원합니다] 롯데 열혈팬 배신규 씨
입력 : 2016-11-06 23:03:31 수정 : 2016-11-08 11:10:06
사직벌 '쌍깃발 아저씨'… "깃발 들면 나도 모르게 기운나"
경기장을 찾기 전 응원용 깃발을 반드시 다림질한다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열혈팬 배신규 씨. 지난 4일 사직야구장에서 응원용 쌍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평범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세상을 빛나게 하는 그대. 부산일보는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살아 있는 열정의 무대 그라운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널 지킬 거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인 'Dream of Ground'의 일부 내용이다.
2009년부터 깃발 들고 응원
경기 때마다 3~4개 가져가
원정까지 전 경기 직접 관람
아내·딸도 함께 구장 찾기도
"지더라도 그냥 즐기면 돼
성의 없는 경기는 안 하길"롯데의 열혈팬인 배신규(55) 씨를 만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배 씨의 목소리를 듣기 전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열혈 롯데팬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라는 생각에 그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지난 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배 씨의 모습을 보자마자 뇌리를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 모자와 주홍색 점프를 입고 나왔지만, 그의 모습에서 롯데 챔피언 유니폼을 입고 양손에 깃발을 흔드는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는 바로 롯데의 열혈팬인 '쌍깃발 아저씨'였다. 경기 때마다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양손으로 깃발을 들고 현란한 몸놀림으로 응원을 하는 그 사람이었다.
배 씨가 롯데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8년부터다. 직장 동료의 권유로 우연히 사직구장을 찾았다가 야구에 푹 빠졌다. 배 씨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였는데, 졌다고 생각했던 경기를 8 대 5로 역전하데예. '이것이 인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타자도 스트라이크 3개, 인생도 3번의 기회, 야구와 인생이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야구는 사람이 홈으로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점이 좋았습니다."
배 씨가 깃발을 든 것은 야구장을 처음 찾은 이듬해부터다. 깃발을 잡고 있으면 마치 태극기를 들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1개만 들고 다녔는데 허전함에 2개를 들고 응원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배 씨는 "타순이 한 바퀴 돈 뒤부터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깃발 응원을 펼친다"면서 "응원단상과 멀리 떨어진 자유석에서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 씨의 깃발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경기 때마다 3~4개의 깃발을 가져가는데, 경기장을 찾기 전 반드시 다림질한다. 새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깃발을 새로 제작하면서 현재까지 만든 깃발만 20개가 넘는다.
'롯데가 이겨야 집구석이 편안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는 배 씨의 전매특허다. 배 씨는 "롯데 팬클럽 중 하나인 '원정대'의 고참 회원이 사용하던 것인데, 그 회원이 돌아가신 뒤 여러 회원들의 허락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사직구장은 물론 원정 경기 때도 배 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배 씨의 롯데 사랑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롯데의 부진을 질타하는 택시 기사가 싫어 타고 가던 택시에서 내리기가 부지기수였다. "내 자식 내가 야단치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야단치는 것은 싫은 것 아임미까."
고향이 경남 진주시인 그는 고향 친구들과도 간혹 다투기도 한다. 경남을 연고로 하는 NC 다이노스가 창단된 이후 팀을 옮기라는 친구들의 권유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배 씨는 해가 바뀌면 깃발을 들고 산으로 간다. 산 정상에서 깃발을 흔들어 그 기운으로 롯데가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어느 해는 1월 1일 광안리 앞바다에 들어간 적도 있는데 정성이 부족했는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멋쩍어 했다.
배 씨는 홈경기는 물론이고, 원정 경기도 직접 가서 본다. 시즌 144경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간다. 배 씨가 야구에 빠지면서 가족 간의 분위기가 한층 좋아졌다고 했다. 2명의 딸은 물론이고 아내까지 배 씨와 함께 야구장을 찾을 정도다.
롯데의 열혈팬인 배 씨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있다. 경기를 분석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경기 운영은 감독이 하는 것이고, 팬은 그냥 즐기면 된다"면서 "팬은 팬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 씨는 구단이나 선수들이 반드시 새겨둬야 할 말을 남겼다. "져도 좋으니 성의 없는 경기는 절대 안 했으면 합니다. 롯데가 있어 행복합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