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박근혜와 문재인의 민낯을 보고 싶다-시즌2

입력 : 2016-11-30 19:40:46 수정 : 2016-12-02 10:02:07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류장수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일련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문득 지난 대선 직전에 '부일시론'에 썼던 글이 떠올라 부산일보를 검색해 본다. 대선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인 2012년 11월 27일 자 부일시론의 '박근혜와 문재인의 민낯이 보고 싶다'라는 글을 다시 읽으면서 당시 이 글을 쓴 동기가 기억났다. 강력한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누가 대권을 잡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엄청난 영향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면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투표할 게 걱정되어 쓴 시론이었다. 부일시론의 결론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국민들은 어느 후보가 진정으로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후보인지 정확히 모른다. 애를 편하게 맡길 곳이 없어 발을 구르는 워킹맘,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의 사정권에 들어가 놀이 없는 창백한 아이, 대학진학에 목숨을 거는 학생, 자녀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는 부모, 졸업을 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숨막히는 수도권에서 홀로 생활하는 지방의 인재,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퇴직 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베이비 부머, 노인병과 외로움으로 노후를 보내는 어르신…. 이들의 아픔을 과연 누가 보듬어 줄 수 있을지, 국민들은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민낯을 보고 싶어 한다."

대선 후보 '민낯' 아는 것 중요
지난 대선 때 '부일시론'서 주장

요즈음 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그때 더 강하게 썼더라면" 후회

정치인의 민낯 모르고 투표하면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 안길 수도

정확히 4년 전에 썼던 결론 부분을 다시 읽어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고 있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우리는 적어도 박근혜 후보의 민낯을 전혀 모르고 대통령으로 뽑은 셈이다. 그로 인해 지금 우리 국민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민낯이 보고 싶다'를 쓸 때 매우 신중했던 기억이 난다. 신문 칼럼은 성격상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특히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이라 더욱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당시에 쓰고 싶었지만 결국 쓰지 않았던 몇 가지 내용이 있다. 하나는 박근혜 후보에 관한 얘기였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후보에 관한 얘기였다.

2012년 여름, 유럽 출장 중에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교수로 있다가 그해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예전부터 박근혜 후보 캠프에 있던 선배였는데, 박 후보를 만나 보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 거라며 캠프 합류를 요청해 왔다. '참 괜찮은 후보'라는 걸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에 글로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캠프 합류는 사양했다. 여당 의원으로서는 드물게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던 그 선배는 이번 총선에서 주류와 대립하면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결과로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 좋은 선배였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문재인 후보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직후인 1998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인상적인 것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부산의 시민운동가들은 부산시 위원회 참여를 처음부터 거부해야 한다고 했지만, 문 변호사는 반대하더라도 참여를 통한 방법이 더 옳다고 주장했다. 합리적 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자리에서 폭탄주는 절대 마시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1차로만 끝내는 문 후보를 보고 일상 생활에서 스스로 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원칙론자로 보였다.

청와대 근무 중에 과로로 치아가 몇 개나 빠진 일, 공사가 워낙 분명해 사적인 부탁을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해운대 엘시티 비리에 문 후보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문 후보의 민낯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정치인들의 민낯,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을 제대로 보지 못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엄청나다. 현재 우리의 광장 집회는 역사적 전환기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실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로 촉발되었던 집회는 여전히 잔재로 남아 있던 비민주적 요소를 씻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속살을 만들어내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대통령 후보의 민낯을 아는 것의 중요성,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투표권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 전 영역의 변혁을 실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