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지는 촛불] 르포-주말 집회 경찰관들의 하루

입력 : 2016-12-04 23:06:13 수정 : 2016-12-06 10: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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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시민들 '고생합니다' 따뜻한 한마디 가슴 뭉클"

지난 3일 오후 부산 서면 촛불집회 현장에 나온 경찰관들이 서면에서 문현교차로 방향으로 행진하는 시민들과 함께 걸어가며 차량과 시민을 분리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올 10월 29일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촛불이 어둠을 밝힌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지난 3일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부산 서면 촛불집회 현장에선 시민들의 함성 너머로 묵묵히 시위대의 안전을 확보하는 이들이 있었다. 버스와 차량, 시위대가 공존한 왕복 7차로 한가운데서 매주 8시간 동안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경찰관들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오후 2시에 먹는 '저녁밥'

집회 현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중대원들이 너비아니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오늘 하루 동안 제공되는 유일한 끼니다. 집회 현장에서는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아주 가끔 자리를 비우는 것 외에는 물 한 모금도 마시기가 쉽지 않다. 박 모(31) 순경의 야광 조끼 주머니를 열자 에너지바 2개가 들어 있었다.

부산지역 주말 촛불집회 일선에 나서는 경찰들은 모두 20~30대 직업 경찰이다. 경무, 수사, 교통 등 각자 맡은 업무도 각양각색이다. 의경들이 모두 서울 광화문으로 투입된 지난달 중순부터 부산지역 9개 경찰서에서 차출된 경찰 1000여 명이 매주 번갈아가면서 시위 현장을 지킨다. 주말 집회 현장근무로 밀린 수사 업무는 평일에 밤을 새워서 처리하고 있다.

맨몸의 '인간 폴리스라인'

오후 4시가 되자 본격적인 차로 통제가 시작됐다. 경찰들은 버스와 승용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폴리스라인 너머로 일명 '불봉(경광봉)'을 들고 맨몸으로 시위대의 안전을 지킨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 위·아래 내복은 필수다.

경관들이 입고 있는 조끼는 무전기와 삼단봉 등 온갖 장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무게만 해도 4~5㎏이 나간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에 무리가 간다. 매주 오후 4시부터 집회 행진이 마무리되는 오후 10시까지 6시간가량을 선 채로 자리를 지킨다. 집회가 시작된 오후 6시, 인파가 몰려들면서 경찰관들이 인도 아래 차로로 밀려 내려가는 아찔한 장면이 이어졌다. 매주 주말 집회 현장에 나오고 있는 박 모(26) 순경은 "경찰관도, 시민도 다치면 안 된다.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주말 반납 가족들에게 미안"

부부 경찰관에게 주말 휴식은 그림의 떡이다. 양 모(35) 경위가 이날 노랑 경찰통제선에 서서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동안 부인(33)은 호송 대기팀으로 함께 현장을 지켰다. 양 경위는 "지난 10월 화물연대 파업 때부터 주말마다 현장에 나가고 있다"면서 "아직 아이가 없어 다행이지만, 자녀가 있는 부부 경찰관들은 주변에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해산 선언, 그제야 안도감

오후 8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면에서 문현교차로 방향으로 행진 행렬을 이어갔다. 형광 외투를 입은 교통경찰관들의 분주한 호루라기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이들은 시위대보다 수백 미터 앞서 뛰어가 교차로로 진입하는 차들을 막아섰다. 문현교차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 주변으로 경광봉을 든 경찰들이 서너 줄씩 겹겹이 서서 둘러쌌다. 행진 신고 시간이 끝난 오후 9시 20분, 시위대가 해산을 선언하고 시민들도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굳은 표정이던 경찰관들의 얼굴에도 그제야 옅은 미소가 퍼졌다.

한 순경은 "지난번 부산역에서 서면까지 시위대가 행진하던 날, 다들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시민들이 '저희 때문에 멀리서부터 함께 걸어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넬 때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민소영 기자 miss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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