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레드 헤링

입력 : 2018-07-12 19: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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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렸다. 오펜하이머는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를 만든 죄책감으로 수소폭탄 제조를 거부해 탄압을 받았다. 매카시즘 열풍 속에 좌파적 성향과 맞물려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과거사도 들춰졌다. 조사 과정에 FBI로부터 소련 스파이로 지목된 셸 엔지니어 조지 엘텐튼이 나왔다. 엘텐튼은 제3자를 통해 오펜하이머로부터 무기 정보를 넘겨받아 소련에 넘기자는 제안을 한 인물이었다. 엘텐튼의 카풀 모임도 조사를 받았다. 멤버에는 오펜하이머의 수업을 들었던 사람도 있었다. 카풀 모임 이름은 '레드 헤링 클럽'. 멤버 중 한 명이 늘 주제와 동떨어진 대화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레드 헤링(red herring)은 훈제 청어다. 냄새가 아주 독하다. 18~19세기 영국에서 여우사냥에 동원된 사냥개의 훈련에 훈제 청어가 사용됐다. 훈제 청어로 사냥개의 후각을 단련시켰다. 여우사냥에 반대하던 동물보호단체가 훈제 청어로 냄새를 흐려 사냥개가 여우를 잡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탈옥수들이 훈제 청어를 몸에 발라 수색견을 따돌리기도 했다.

레드 헤링은 '논점을 흐리는 말이나 행위'를 뜻하는 사회적 언어로 정착됐다. 레드 헤링은 그래서 앨프리드 히치콕의 발명품인 '맥거핀'과도 의미가 통한다. 맥거핀은 히치콕이 영화 '해외 특파원'(1940년)에서 별 의미 없이 사용한 암호명이었다. 주제와 상관없는 영화 장치다.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학적 장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레드 헤링과 맥거핀은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잦다.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정윤회 문건 사건'이 대표적이다. 문건이 공개돼 진상 규명 요구가 높았지만, 문건 유출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내용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흐지부지됐다. 결국 유출자가 사법처리되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최근 공개된 기무사의 계엄 문서가 충격을 주고 있다. 신군부를 등장시킨 보안사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기무사의 정치 개입을 두고, 유출 경위를 따져야 한다거나, 정치적 기획 운운하고 있다. 냄새 나는 청어로 진실을 호도하겠다는 발상이다. 레드 헤링은 정윤회 사건으로 족하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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