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운전 가상으로 해 보니] 혈중알코올농도 0.3%로 차 시동… 100m도 못 가 '살인기계' 돌변

입력 : 2018-11-15 19:40:25 수정 : 2018-11-15 22: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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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부산 남구 도로교통공단 부산지사 첨단교육센터에서 본보 기자가 차량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음주운전 체험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살짝 흔들리자 차체가 '호랑나비'처럼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다. 직진 도로였지만 중심을 잡으려 할수록 차는 미친 소처럼 날뛰었다. 도로와 갓길 가로수는 전용안경 없이 보는 '3D 화면'처럼 흐물댔다. 결국 100m를 채 가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쾅'. 시속 80㎞로 마주 오는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스피커엔 굉음이 울리고, 화면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다. 면허 취소의 3배가 넘는 혈중알코올농도 0.3%로 운전했을 때 벌어진 가상 시뮬레이션이다.

기자가 15일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도움으로 '차량 시뮬레이터'를 돌려 본 결과, 음주운전은 '도로 위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혈중알코올농도 0.2%도 유턴이나 좌우 회전은 엄두도 못 낼 만큼 시야가 흐려지고, 차량이 심하게 흔들렸다. 가상 체험 세 번 모두 300m도 못 가고 '참사'로 이어졌다. 평균 소주 한 병 마셨을 때인 혈중알코올농도 0.125%(70㎏ 몸무게 성인 남성 기준) 모드에서도 시야만 다소 선명할 뿐, 핸들과 브레이크 반응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미친 소처럼 날뛰는 차량
핸들조작 마음대로 안돼
브레이크 밟았는데도 '쾅'

도로교통공단서 체험 가능


더욱이 이 정도 '만취'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공단 2층 강의실 앞에 놓인 혈중알코올농도 0.15~0.2%의 '음주체험 고글'을 착용하자 곧바로 '원근감'을 잃었다. 1m 앞에 보이는 책상은 다가가기도 전에 무릎을 때렸다. 옆 테이블을 손으로 짚지 않으면 걸음을 옮기기 두려울 정도. 소주 1~2병에 달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0.15%짜리 고글도 어지럼증 때문에 5분 이상 끼고 있기 힘들었다.

최근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윤창호 씨 사고 이후에도 음주운전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엔 치사량에 육박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333%로 고속도로를 내달린 40대가 경찰에 붙잡히는 등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단 교육담당 최진호 교수는 "사고가 나면서 나는 굉음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등 단순히 듣고 보는 것보다 실제 체험을 해 보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크다"면서 "공단엔 음주, 졸음, 과속운전을 경험할 수 있는 VR 등 무료 체험 장비가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음주사고가 잇따르며 체험을 원하는 방문객도 증가 추세다. 올 상반기 113명이던 방문객 수가 지난달에만 144명을 기록했다.

도로교통공단 이정상 부산지부장은 "음주운전자를 대상으로 재범률을 낮추는 사후교육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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