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신춘문예-평론 당선 소감] 매일 한 장씩…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입력 : 2018-12-31 19: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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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현

태풍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숙소를 나서는데 카운터를 보던 사장님이 이런 날씨에 어딜 나가냐고 하셨다. 얼마 안 가 우산이 부러졌고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고생을 하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중 가장 좋은 작품을 만났다. 아, 이 영화를 보자고 나는 굳이 태풍속으로 들어갔구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나 격렬하게 비를 뿌리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가 떠오른다. 글을 쓰는 건 마라톤과 같아서, 마라토너가 앞이 아닌 바닥을 보고 뛰듯이 텅 빈 원고지를 고개 숙여 바라보며 매일 한 장씩 꼭꼭 눌러썼다던 구로자와 아키라. 세트장 바닥이 물로 흠뻑 젖는 것과 백지가 글로 빼곡해지는 것은 마라토너의 주행과 비슷한 유비 관계일지도 모른다.

망가진 우산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달리던 그 날, 영화를 보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던 중 갑작스레 전해진 당선 소식에 그날 그때처럼 어리둥절하다. 조금 더 가까이 영화의 기압권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매일 한 장씩,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부터 듀나를 사숙했다. 오랫동안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한 듀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내내 속만 썩인 가족들에게 모처럼 기쁜 소식 하나 전하게 됐다.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내게 첫 번째 독자가 되어준 D에게 감사한다. 당선작은 D 없인 완성될 수 없었다.



약력: 1992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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