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끊자] 1. 이성 혐오-남녀 인터뷰

입력 : 2019-01-02 20:21:08 수정 : 2019-01-03 09: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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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과 女, 모두가 억울하고 피해자… 좁혀지지 않는 간극

지난달 27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끝장집회. 대학생 W 씨는 지난해 5월부터 매달 한 차례 열리는 이 집회의 기획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지난달 27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끝장집회. 대학생 W 씨는 지난해 5월부터 매달 한 차례 열리는 이 집회의 기획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여자는 내내 절실했고, 남자는 억울해했다. 둘 다 1990년대에 태어났다. 그리고 2019년 현재 부산의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 비친 남녀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말하고 있었다.

시리즈 ‘혐오를 끊자’에서 가장 먼저 조명한 대상은 남녀 간 이성혐오다. ‘된장녀’ ‘한남충’ ‘쿵쾅이’ ‘재기해’… 인터넷 게시판에 넘쳐나는 혐오의 단어들, 과연 남녀는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적(敵)이 된 것일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의 대학생 남녀를 각각 만났다. 과연 그들의 감정이 온라인 속 ‘적의’와 같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한자리에서 ‘끝장토론’이라도 벌여 보고 싶었지만, 남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따로 만나 나눈 각자의 이야기를 지면에서나마 합쳤다.


‘된장녀 vs 한남충’ 비하


성범죄, 사회 진출 분야

입장 대립·시각 차 현격


혐오 표현에는 반대지만

서로 불신과 피해의식 가져


■불안한 여성들, 억울한 남성들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나?” 여자 W(25) 씨의 이야기는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시작됐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성폭력에 대해)늘 불안에 떠는 삶”이라고 W 씨는 말했다. W 씨는 지난해 5월부터 부산성폭력성차별끝장집회 기획단에서 일하고 있다. 집회는 매달 한 번 서면에서 열린다. “집회에 참가한 여자들의 외침은 단순하다. ‘여름밤 자취방 창문 좀 활짝 열고 자고 싶다.’ 남자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 여자에겐 평생의 소원이 되기도 한다.”

남자 M(27) 씨는 억울하다. “성범죄에 대한 불안이 크다면 치안 강화나 범죄자 처벌 강화를 요구해야지, 왜 애먼 남자들을 비난하나?” 학부 졸업을 앞둔 M 씨는 현재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입법 활동에 관심이 많은 M 씨는 “우선 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로스쿨 지망 동기를 밝혔다. 그런 때문일까. M 씨는 W 씨가 던진 문제에 대한 해결점도 법·제도에서 찾으려 했다. M 씨는 말한다. “안전한 삶을 원하면 남자를 비난하지 말고 관련법 강화를 위해 국회를 찾아가라.”


■성범죄 방지, 남성이 앞장서야

M 씨의 억울함은 이른바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왜 여자는 피해자고, 남자는 범죄자라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나? 우리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만 있는게 아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남자였다. 남자도 밤길이 무섭다.”

W 씨는 “여자로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모든 남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안한 여자로선 모든 남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 성범죄에 대한 남자들의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탓한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면, 남자들이 스스로 성범죄 방지를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나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의 성범죄 피해에 대해선 ‘강 건너 불 구경’이다.”


■여성의 사회진출? 아직도 부족!


M 씨는 현재의 ‘여성채용목표제’에도 불만이 많은 듯했다. M 씨는 여성채용목표제를 “기계적인 평등을 강요하는 제도”라고 지적한다. “평등의 본질적 개념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이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신체적 조건이 다르다. 그런데도 신체적 조건이 중요시되는 직무특성을 가진 군, 경찰 분야의 채용에까지 기계적으로 ‘같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W 씨는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채용목표제’는 여성의 최소한의 사회 진출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다고 말하지만, 남녀 임금격차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고,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유리천장’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이런 불균형한 현실 속에서 여성채용목표제는 불균형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이다.


■20대 남성의 외침 “우리도 약자”


그렇다면 정말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인가? M 씨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기성세대와 20대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M 씨는 “20대 남자가 왜 기득권층이냐”고 반문한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힘센 남자아이들이 우유 박스 옮기고 청소도 해라’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대생만을 위한 면접 컨설팅, 여대생 휴게실 등 오히려 역차별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다. 그런 우리가 왜 기득권층이냐?”

W 씨는 “더이상 남자가 기득권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남자들뿐”이라고 꼬집는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가 여전한 이상, 남자는 나이에 상관 없이 일상 생활 전반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살고 있다. 남자들만 모를 뿐이다. 여자들이 겪는 불편함, 고통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끝내 좁혀지지 않는 시각차


M 씨와 W 씨 모두 인터넷을 휘젓는 혐오표현에 대해선 찬성하지 않았다. 사막에서 찾은 바늘 같은 공통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혐오표현 속에 숨은 뜻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M 씨의 경우를 보자. ‘된장녀’라는 표현은 ‘혐오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된장녀’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 ‘여성은 권리만 누리려 하지 의무나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찬성한다. 마치 “나(남자)는 너희(여자)를 ‘된장녀’라고 부르지는 않겠지만, 너희들는 그런 종족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W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남충’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한국 남자들의 우월의식과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대해서는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혐오표현은 반대했지만, 그 표현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그대로인데, 단어만 달리 사용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녕 남자와 여자는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적이 된 것일까. 마지막 질문을 각자에게 던졌다.

여자(혹은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여자들이 ‘남녀는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M 씨)” “우리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현재의 대립을 해소하려면 남자들이 바뀌어야 한다.(W 씨)” 2019년 새해 벽두, 화해의 길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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