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끊자] 1. 이성 혐오-남녀 대결사

입력 : 2019-01-02 20:24:05 수정 : 2019-01-03 09: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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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무임승차는 죄” 워마드 “비하 못 참아”… 어느새 전면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수많은 추모 포스트잇. 이 사건으로 여성들은 성폭력이 ‘여성 모두의 것’이라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일보 DB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수많은 추모 포스트잇. 이 사건으로 여성들은 성폭력이 ‘여성 모두의 것’이라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일보 DB

사실 한국의 남녀 갈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남녀가 다툰 가장 큰 이슈는 ‘군 가산점’이었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폐지 운동이 일었고, 집 떠나와 열차 타고 군대를 다녀와야 했던 당시 남성들은 크게 반발했다. 2001년에는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이 예비역의 특징을 ‘나선다, 그러나 게으르다’ 등으로 규정하면서 전국의 예비역들을 화나게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특정 사안에 대한 국지전과 같은 다툼이었다. 2015년을 전후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혐오발언을 생산해 내면서 남녀 간의 다툼은 국지전을 넘어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1990년대 ‘군 가산점’ 갈등 촉발

2015년 전후 온라인 혐오발언 논쟁

극단적 신조어 양산·‘미러링’ 반박 등

男-女 다툼 ‘현실 속 범죄’로 확산


■일베의 여성혐오


인터넷에서 혐오의 포화를 먼저 쏘아 올린 쪽은 남성이었다. 그 중심에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있었다. 초기 일베를 이끈 정의는 ‘공정한 경쟁’이었다. 특권층의 ‘노력 없는 대가’ ‘무임승차’는 그들에게 최고의 ‘악(惡)’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 대상 중 하나로 여성을 꼽았다. 그들에게 여성은 ‘권리만 누리려고 하지 의무는 다하지 않는’ 특권층이었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인 ‘된장녀’ ‘김치녀’와 같은 극단적인 신조어가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산됐다.

‘엠엘비파크’ ‘클리앙’ ‘보배드림’ 등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남성이 고비용을 부담하는 데이트 문화, 남성이 집 마련을 도맡는 결혼 문화를 지적하며 “우리가 피해자다”라는 주장이 넘쳐났다.


■메갈리아·워마드의 등장과 미러링


2015년 여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하 메르스) 파동이 발생한다. 당시 홍콩에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한국인 여성 2명이 당국의 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를 중심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글이 급속히 늘었다. 이에 반발한 여성들이 온라인에 새로운 공간 ‘메갈리아’를 구축했다.

‘메갈리안’들은 ‘미러링’(남자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을 내세워 ‘한남충’ ‘씹치남’ 등의 용어를 사용해 여혐 담론에 반격했다. 이 사이트를 중심으로 화장실 몰카 근절 운동, 소라넷 폐지 서명운동 등이 진행되기도 했다.

메갈리아는 이후 ‘워마드’로 파생된다. 워마드는 2015년말 게이 비하 표현과 아웃팅(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을 금지한 메갈리아 운영진에 반발한 회원들이 메갈리아에서 이탈해 만든 사이트다.이후 메갈리아는 사이트를 페쇄했지만, 워마드는 지금껏 여전히 왕성한 남혐 활동을 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2016년 서울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한 건물 내 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됐다. 이 사건이 주목받은 것은 범인이 일부러 여자를 골라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받아들였고,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수많은 추모 포스트잇과 ‘나는 운좋게 살아남았다’는 해시태그(#)는 각자 겪은 폭력의 경험들을 개인의 것에서 ‘여성 모두의 것’으로 전환시켰다.


■홍대 누드 도촬 사건과 혜화역 시위


2018년 5월 한 20대 워마드 회원이 서울 홍익대 회화 수업 중 남성 누드 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찍어 워마드에 유포한다. 경찰은 사건 발생 10일 만에 범인을 긴급체포했다. 이에 여성들은 “피해자가 남성이라 경찰이 빨리 잡았다”라며 ‘성별 편파수사’ 주장을 제기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장소와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이 극히 제한된 이번 사안의 특성을 간과한 비약”이라며 정면 반박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성별 편파수사’ 규탄을 위해 혜화역에서 6차례에 걸쳐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열었다. 한국 여성들이 단독으로 치른 시위 중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규모가 큰 시위였다.


■곰탕집 사건·이수역 사건


부산의 한 남성이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1심 재판에서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1심 선고 직후인 2018년 9월 남성의 부인이 인터넷 ‘보배드림’에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 판결이 났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분노한 남성들은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라는 네이버 카페를 만들고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시위’를 벌였다. 여성이 아닌 남성이 ‘성차별’에 대항해 거리로 나선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이례적인 만큼 시행 착오도 컸다. 10월 열린 1차 시위의 참가자 수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11월에 열린 2차 시위에는 400~500명이 모였다.

2018년 11월에는 서울 이수역 인근 술집에서 남녀 무리의 몸싸움이 있었다. 이후 여자 측은 인터넷 ‘네이트 판’에 “여자 2명이 남자 4명에게 ‘메갈’이라 인신공격을 당하고 폭행까지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여성들은 ‘여성 혐오 범죄’라며 분노했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하룻밤 사이 20만 명 이상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단순 쌍방 폭행’이냐 ‘여성 혐오 범죄’냐를 두고 남녀간 성대결 양상으로 번졌다. 경찰은 남녀 모두 ‘폭행’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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