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마지막 주민 윤연순 할머니에게 '저도의 추억'이란

입력 : 2019-09-18 17:42:59 수정 : 2019-09-18 18:20:16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상괭이 모래굼턱…누구보다 저도의 추억 많지”


“늘그막에 문재인 대통령과 사진도 찍고, 같이 나무도 심고, 출세했지 뭐. 지금도 저도에서 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저도의 마지막 주민, 윤연순(사진·84) 할머니는 47년 만에 이뤄진 저도 개방이 누구보다 반갑고 감격스럽다. 그는 거제 하청면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장목면 하유마을로 시집온 뒤, 1960년께 가족과 함께 저도로 들어갔다.

두 딸을 낳고 먹고 살기가 더 궁색해지자 시아버지와 큰 시숙이 먼저 들어가 농사를 짓고 있던 저도로 뒤따라 이주한 것이다. 저도에서 다시 5남매를 더 낳았다. 7남매 중 5명은 저도가 고향인 셈이다.

“시아버지와 시숙께서 저도에서 논 11마지기로 농사를 지으셨지. 우리 가족은 농사일도 돕고, 바다에서 물질도 하면서 살았지. 언제부턴가 박정희 대통령이 가족들과 휴가를 오시더라고. 대통령이 오면 멀리서 환영 행사를 지켜보곤 했지.”

박정희 대통령은 한번 들어오면 보통 5일에서 1주일 정도를 머물렀다. 10·26 사건이 벌어지던 집권 마지막 해에는 무려 15일을 보내기도 해 주변에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처음 보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을 즐기는 큰딸 근혜와 풍뎅이를 잡으러 뛰어다니던 어린 아들 지만이도 가끔 봤다.

그러던 중 나중에 이른바 청해대로 불린 대통령 별장과 골프장 건설이 시작됐다. 대통령 별장지로 논밭이 들어가고, 연이은 가뭄으로 농사도 망쳐 하소연을 하자 소를 키워보라고 10마리 주는 등 간접 보상도 이뤄졌다.

“처음엔 젖소를 키워보라고 했는데, 젖소는 우유 팔 곳도 없고 안 되겠더라고. 사정을 말하자 까만색 흑우를 열 마리 줘서 키웠는데 이 검정소가 영 신통찮았어.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고….” 나중에는 누렁소 10마리를 받아 섬에서 키웠다.

별장 건설 당시엔 해군과 인부들이 할머니 집에서 숙식을 하기도 했다. 해군 사병들은 할머니를 고참 장교쯤으로 대우했고, 그도 스스로 ‘별 세 개짜리 장군’을 자처하며 사병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몇 년 전에는 당시 김 수병으로 부르던 앳된 병사가 70대 할아버지가 돼서 찾아와 50년 만에 감격적인 재회를 하기도 했다.

“큰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방학 때 친구들이 놀러와 군인들과 배구를 하기도 했지. 바로 앞 바다에는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가 지천으로 몰려다니고. 우리는 곱수리라고 불렀지.”

그는 딸들과 해안가에서 톳을 뜯고. 물질을 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이어갔다. 하늘편, 모래굼턱, 적삼바위, 줄바위 등 당시 부르던 저도의 지명들이 아직도 머리 안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저도의 추억’이 많은 사람이다.

별장이 건립되고 주민들이 하나 둘 밀려난 뒤 윤 할머니 가족이 마지막으로 저도를 떠났다. 정확하게 몇 년도인 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큰 딸이 하청면 친정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니 1973~74년 쯤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합당한 보상은 없었다. 생계용으로 어업권 허가를 받았지만 1년마다 연장하는 조건이었고 그마저도 인근에서 간첩 사건이 발생한 뒤 어업활동이 금지됐다.

“엄혹한 시절이었어. 대통령이 휴가를 오거나, 군 장성들이 여름에 피서차 들어오면 한참 전부터 온 마을과 뒷산에 군인들이 가득 깔렸어. 고기잡이 하러 나가던 어선들도 출입이 전면 금지되고. 지금은 일반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다시 저도에 들어가는 시절이 됐으니 세상 많이 좋아졌지.”

저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하유마을 언덕에 터를 잡은 뒤에도 할머니와 저도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군인들이 휴가를 나오는 날이면 모래 해변에서 연기나 불을 피워서 신호를 줘. 그러면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들어가 데리고 나오곤 했지. 우리가 제때 못보면 동네사람들이 알려주고 그랬지. 그때는 엔진도 없었지. 팔로 노를 젓는 거룻배를 타고 그렇게 군인들을 실어 날랐어.”

저도와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마을 주민과 함께 어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가 잔디밭 제초작업을 하며 용돈을 번다. 지난 7월 30일에는 저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식수를 하기도 했다. 당시 찍은 사진을 자랑스레 방 한가운데에 붙여놓고 시간날 때마다 들여다 본다.

“내 살아생전 저도가 다시 국민에게 돌아오는 모습을 봐서 감회가 새롭지. 마지막 저도 주민은 서서히 잊혀 지겠지만, 저도는 영원히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로 남았으면 좋겠어.”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부산일보 | ‘금단의 섬’ 경남 거제시 저도 47년 만에 ‘만인의 섬’으로...

부산일보 유튜브 구독하기 ☞ http://goo.gl/Nu46ky

부산일보 네이버TV 구독하기 ☞ http://tv.naver.com/busanilbo

디지털본부 정수원 PD blueskyda2@

영상제공 거제시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