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도로개설로 사라질 위기 통영 원균 장군 추정 무덤 보존길 열렸다

입력 : 2020-06-10 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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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원균 장군의 실제 시신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봉분.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서 고성군 거류면 당동리로 이어지는 국도 77호선 주변 야산 텃밭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부산일보 DB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원균 장군의 실제 시신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봉분.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서 고성군 거류면 당동리로 이어지는 국도 77호선 주변 야산 텃밭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부산일보 DB

속보=도로개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경남 통영의 원균 장군 추정 무덤(부산일보 4월 29일 자 11면 보도)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통영시에 따르면 사업시행자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최근 훼손 논란이 불거진 원균 묘 추정 무덤을 ‘고성-통영 국도 77호선 확장공사’ 구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통영시 김호석 문화예술과장은 “설계 변경을 통해 무덤을 지나는 것으로 계획된 도로 가장자리 배수로를 반대편으로 옮기로 했다”면서 “후손들과 협의 후, 발굴 조사를 통해 진위를 가려내고 진묘로 판명되면 보존, 활용 방안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균 장군은 이순신과 함께 출정한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격퇴했지만, 가덕도해전과 칠천량해전에서 연이어 참패한 뒤 후퇴하다 정유년(1597년) 7월 전사했다. 이후 선조 38년(1605년) 이순신, 권율 등과 함께 ‘선무1등 공신’에 추록됐지만 시신이 없어 고향인 경기도 평택에 가묘를 만들어 봉했다.

그런데 실제 시신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봉분이 통영에서 발견됐다.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서 고성군 거류면 당동리로 이어지는 국도 77호선 주변 마을 작은 텃밭(광도면 황리 산435) 중간에 완만하게 돋아난 흙더미다. 현재 굵은 자갈과 풀에 덮여 겨우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과거부터 인근 마을 주민 사이에 ‘엉규이(원균의 지역적 발음으로 추정) 무덤’ 또는 ‘목 없는 장군 묘’로 불려 온 이 봉분은 각종 문헌과 구전을 토대로 원균의 묘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통영군사편찬위원회가 1985년 펴낸 ‘통영군사’와 통영문화원의 ‘통영향토사 연구 논문집’ 그리고 선조실록 및 선조수정실록에 선전관 김식이 기록한 원균의 마지막 행적을 고려할 때 이 봉분이 원균의 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식은 칠천량 해전을 전후해 선조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7월 15일 밤 수많은 왜선이 몰려왔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던 통제사 원균은 고성 추원포(秋原浦)로 후퇴해 주둔하다 간신히 탈출했는데, 늙어서 행보하지 못하는 원균을 향해 왜노 6~7명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그 뒤로 생사를 알 수 없었다’고 적었다. 추원포는 오늘날 광도면 황리로, 고성 당동으로 이동하다 전사했다는 게 향토사학계의 설명이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2004년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통영시)’도 이 봉분을 ‘전 원균묘(傳 元均墓)’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성웅으로 추앙받은 이순신과의 갈등 관계와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장본인이라는 낙인 탓에 후손조차 애써 외면해 왔고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그러다 최근 봉분을 포함한 주변 일대가 국도 확장공사에 편입되면서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이를 두고 지역사회에선 비록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고 전장에서 달아난 패장으로 기록된 인물이지만 패전의 아픔도 기억해야 할 역사라는 점에서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향토사학계 관계자는 “이참에 DNA 검사 등을 통해 진묘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무덤이 있는 장소는 원균 장군 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 수군이 전사한 자리인 만큼 일대를 추모공원으로 조성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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