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거죠.”
남들은 은퇴를 준비 중인 시기에 인생의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 55세 나이에 아파트 경비원에서 수습 변호사가 된 권진성 씨가 그 주인공. 28년 만에 그렇게 원하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권 씨는 “하늘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거라 생각한다”며 웃었다.
지난 4월 변호사 합격 권진성 씨
1993년 대학졸업 후 고시 첫 도전
결혼 후 행·사시·변호사 ‘고시병’
청소부·막노동꾼·경비원으로 생계
별난 삶 내색 안 한 가족들에 감사
권 씨가 처음 고시에 발을 들인 건 동아대를 졸업한 1993년이었다. 당시 5급 수사관을 뽑던 검찰 직렬의 행정고등고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고시 합격은 어머니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고시 합격생이 나오면 집안이 일어선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낸 어머니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나를 키운 원동력은 그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듬해인 1994년 행정고등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수년 내 최종합격도 자신한 권 씨였다. 그의 말처럼 생계 대책도 없이 무모한 자신감에 곧장 결혼까지 했지만 행정고등고시에서 사법고시, 변호사시험까지 그의 고시생 생활은 그 뒤로 내리 28년간 이어졌다.
권 씨는 1년을 ‘생계비를 버는 8개월’과 ‘시험을 준비하는 4개월’로 나누었다. 막노동부터 경비원까지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1차 시험은 통과했지만, 고대하던 최종합격 소식은 요원했다. 중년이 되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권 씨는 동래구에서 치킨 가게도 운영했다. ‘곧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겠다’고 할 정도로 영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치킨 가게를 3년 만에 접었다. 개업 이후 계속 1차에서 낙방한다는 게 이유였다.
신념인지, 아집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갔다. 주위의 기대는 걱정으로 변해 갔다. 하나둘 지인들과 연락이 끊어졌고 권 씨는 고립되어 갔다. 그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씩 산에 올랐다”고 했다.
2015년 동아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전셋집에서 월세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수의 진을 친 그에게 올해 4월 24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변호사 후배에게서 합격 축하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던 권 씨는 ‘이제야 내 고단했던 인생의 1막이 끝났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합격 소식에 눈시울을 붉히시던 어머니는 그 뒤 2개월이 채 되지 않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권 씨는 “합격 소식을 전하자 어머니가 ‘먼저 간 네 아버지에게 ‘할 일 다 했다’고 할 수 있겠다’며 기뻐하셨는데 급작스럽게 쓰러지셨고 병간호를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49재를 지내고 있었다. 너무 늦어 죄송할 따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에게는 한평생보다도 길 28년의 여정이었다. 권 씨는 이제는 가족에게, 지인에게 못다 한 고마움을 전하며 살아갈 참이다. 그는 “‘제발 평범하게 사시면 안 되나요?’라고 속으로 천 번 만 번 외치고 싶었을 텐데 그런 내색 한 번 안 한 가족 덕분에 오늘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권 씨는 거제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습 과정을 밟고 있다. 올해 10월께 개인 사무실을 낼 계획이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닙니다. 포기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절대 실패한 게 아니니까요.” 55세 나이에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연 권 씨가 절망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던지는 작은 위안이다.
글·사진=서유리 기자 yool@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