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가장 막막한 순간은 어디 물어볼 곳이 없을 때이다. 계속 나아가야하는지 적당한 곳에서 되돌아가야할지,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삶의 매순간이 고민이고, 우리에겐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막막함에서 탄생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지도일 것이다.
인류는 문자를 만들기 전에도 지도를 그렸다. 지난 1993년 스페인 나바라 지역의 한 동굴에서는 무려 1만 4천 년 전에 구석기 시대 인류가 그린 지도가 발견되었는데 바위에 새겨진 이 지도에는 수많은 선이 그어져 있고 강을 건너는 안전한 길도 표시 되어 있을 정도로 정교했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렇듯 지도는 우리가 어떠한 공간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자, 제작 당시의 공간 인식, 사회적 상황 및 수요의 이유 등이 반영되는 것이다.
최근 한 장의 지도가 화제가 되었다. 지난 달 영국에서 열린 G7 회의 참석 후 스페인 상원의사당 도서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소개된 '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가 바로 그것이다. 스페인의 안헬 곤잘레스 도서관장이 소개한 이 지도는 프랑스 지도 제작자인 장 밥티스트 부르기뇽 당빌(Jean-Baptiste Bourguignon d'Anville)이 제작한 것으로, 서양지도 중 현존하는 최초의 우리나라 전도이자, 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가 된 지도이다. 이 지도가 스페인 국립기관의 주도하에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소개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다시 한번 인정받은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당빌은 18세기 프랑스 왕실 지도 제작의 수장으로 당시 최고의 지리학자 중 하나였다. 그는 중국 실측 지도인 '황여전람도 皇輿全覽圖'를 바탕으로 '조선왕국전도'를 제작하였고, 이 지도는 1735년 예수회 신부인 장 밥티스트 뒤 알드(Jean – Baptiste Du Halde)의 '중국지' 에 수록된다. 4권으로 제작된 이 책의 원 제목은 '중화제국과 중국령 타타르의 지리, 역사, 연대기, 정치, 자연에 대한 기술'이다. 이 책은 중국 전반과 주변 지역에 대한 백과사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 책의 4권에 바로 '조선왕국전도'와 조선왕국의 지리적 기술과 간추린 조선 역사가 기록되어있다.
이 지도에서 주목할 점은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이다. 울릉도를 프랑스식 발음인 “판링타오(Fan-ling-tao)”, 독도를 “친찬타오(Tchian-chan-tao)”로 표기하였는데 이는 울릉도鬱陵島의 ‘울鬱’을 ‘반礬’으로, 독도의 옛 명칭인 우산도于山島의 ‘우于’를 ‘천千’자로 잘못 읽고, 그 발음대로 표기해서 생긴 오류이다. 이후 한동안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에는 이 표기 그대로 울릉도와 독도 명칭이 작성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지도는 우리나라의 각 지명을 상세히 표기하였는데, 부산 지역을 살펴보면, 동래(Tong-lai), 기장(Kitchang), 영도(Youei-ing-tao), 가덕도(Tcheng-te)의 지명까지 상세히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가 스페인 상원 도서관에만 소장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근무하고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도 소장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런 귀중한 자료가 국내에, 그것도 우리나라의 해양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국립해양박물관에 있다는 점은 소속 학예사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다. 이 지도는 여러번 우리박물관에서 기획하는 다양한 전시에 자주 소개가 되곤 했었지만, 정확한 명칭을 기억하는 관람객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혹시나 여러분들이 이 지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더라도, 우리 가까이에 이런 귀한 자료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또 하나의 생활의 발견이 아닐까?
권유리 객원기자 yulee@busan.com/ 국립해양박물관 문헌정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