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베르사유 궁전에 빛나는 아폴로·태양왕의 광채

입력 : 2021-12-31 09:03:23 수정 : 2021-12-31 09: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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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학 기행-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

■어린 왕의 수모


1648년 10월의 늦은 밤이었다. 초가을인데도 날씨는 매우 쌀쌀했다. 덜덜 떨 정도로 춥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밖에 오래 서 있으면 한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루브르 궁전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몸을 웅크린 채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추위에 시달리던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성문 밖 멀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이끌던 장교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드디어 폭도들이 몰려오는군. 문을 다시 잠그도록 해라. 그리고 모두 칼을 들어라.”

사람들이 시내 쪽에서 루브르 궁전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하루 전만 해도 얌전했지만 갑자기 폭도로 돌변한 시민들이었다. 다들 손에는 몽둥이나 쟁기, 쇠스랑 같은 흉기를 들고 있었다. 폭도들은 난폭하게 궁전 문을 두들겼다.

“왕을 만나게 해 주시오.”

장교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 늦은 시간에 전하를 알현할 수는 없소. 벌써 침소에 드셨기 때문이오. 아직 어린 분이셔서 일찍 주무셔야 하오.”

장교의 거부에도 폭도들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왕이 파리에서 달아났다는 소문이 있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 눈으로 확인이라도 하게 해 주시오. 왕이 궁전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한다면 순순히 물러나리다.”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에 설치된 루이 14세 동상.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에 설치된 루이 14세 동상.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장교는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 그렇게 우긴다면 할 수 없군. 대신 모든 사람이 다 들어오게 할 수는 없소. 대표로 10명만 들어오게 해 주겠소.”

폭도들은 장교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표들이 들어가서 살펴본 다음 왕이 달아났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그 이후에라도 궁전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도 늦지 않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어린 왕이 정말 자고 있다면 괜히 소란을 떨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대표 10명을 뽑아 왕궁 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국왕 루이 14세는 창문을 통해 폭도들과 병사들이 다투는 모습을 다 보고 있었다. 곁에는 어머니인 앤 태왕후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어서 침대에 눕도록 하세요. 그리고 깊이 잠든 척 하십시오. 폭도들이 들어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모른 척 하고 계속 자는 시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어요.”

“어머니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는 방 한쪽에 있는 비밀의 공간에 숨어 있도록 하지요.”

루이 14세는 어머니의 이야기대로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쓴 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도 이어졌다.

“다들 조용히 하시오. 전하께서는 저기 누워계시오.”

“정말 왕인지 확인해야겠소.”

폭도 대표 중 한 명이 침대로 다가갔다. 장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칼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의 가슴은 콩콩 뛰고 있었다. 침대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폭도가 조용히 속삭였다.

“왕이 맞네. 정말 자고 있어.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깊이 잠들었어. 우리가 괜히 걱정했군. 돌아가세.”

침대에 누운 왕의 얼굴을 확인한 폭도 대표들은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삐걱 하면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 14세는 침대에 누운 채 눈만 떴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벌게져 있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의 수모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야.’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

■프롱드의 난

루이 14세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루이 13세의 뒤를 이어 불과 다섯 살의 나이에 왕 자리에 올랐다. 어머니 앤 태왕후가 섭정을 맡아 어린 아들 대신 국정을 다스렸다. 그녀는 철저한 왕권신수설 신봉자였다.

“프랑스 왕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오. 어느 누구도 저항하거나 반박할 수 없소.”

태왕후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귀족이나 의회 의원은 모조리 감옥에 가둬버렸다. 아들이 나중에 어른이 돼 직접 통치에 나섰을 때 절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려는 게 그녀의 뜻이었다.

당연히 귀족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귀족들은 봉건 세력이었다. 왕권 강화는 결국 중앙 집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전통적인 봉건 특권을 무너뜨리게 될 거라는 게 그들의 예상이었다. 그들은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다. 언젠가는 불만을 터뜨리더라도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날이 오리라고 믿었다. 그들이 바라던 ‘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루이 14세는 취임 초기부터 30년 전쟁을 수행하느라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총리인 마자랭 추기경은 전통적 징세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곱 개의 재정 칙령을 발표했다. 그 중 여섯 개가 세금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면세 혜택을 받던 고등법원 판사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항목도 포함돼 있었다.

고등법원 판사들은 납세를 거부했다. 그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 조치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왕의 권한을 제약하려고 했다. 당시 고등법원에는 관습에 어긋나는 법령을 거부함으로써 왕의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마자랭은 고등법원 판사들을 체포함으로써 그들의 반발을 억누르려고 했다.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기다리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왕에게 국민의회 소집을 요구했다. 여기에 발맞춰 파리 시민들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폭도로 돌변해 한밤중에 루이 14세가 누워있던 왕궁으로 쳐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걱정은 세금이 늘어나면 먹고 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데 있었다. 고등법원의 권한을 축소할 경우 평민의 권리도 제약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지방의 요구를 중앙 정부에 요구하는 역할을 하는 지역 대표를 마자랭이 하루아침에 줄인 것에도 불만이 적지 않았다.

후세 역사학자들은 당시 평민이 봉기한 사건을 ‘프롱드의 난’이라고 불렀다. 프롱드는 ‘돌팔매’라는 뜻이었다. 반란에 가담한 군중이 돌을 던져 루브르 궁전의 창문을 깨뜨렸다고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프롱드의 난은 1648~53년 5년간이나 이어졌다.

어린 루이 14세는 두 차례나 파리에서 달아나야 했다. 한 번은 루브르 궁전에 연금당하기도 했다. 그가 나중에 파리 시민은 물론 귀족을 불신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시의 군인이자 외교관이었고 작가였던 루이 드 루브루아 생시몽 등 많은 사람은 그의 심정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루이 14세는 혼란기의 여러 사건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가 파리에서 달아나야 했을 때 살았던 집은 사실상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성으로 마음 편한 외출을 떠난 게 아니라 모욕적인 탈출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리를 떠나다

“아버지가 사냥을 즐길 때 묵었던 곳이 바로 이 성이라는 말이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대단한 곳이군요. 성도 멋지고, 정원도 훌륭해요. 이곳을 넓혀 프랑스의 궁정을 옮기고 싶군요.”

“전하,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왕이 파리를 떠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1651년 여름 열세 살이 된 루이 14세는 마자랭 추기경과 함께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로 사냥을 갔다. 아버지 루이 13세가 곤디 가문으로부터 땅을 사들여 성을 짓고 정원을 만든 곳이었다.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루이 14세는 처음 가본 베르사유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루브르 궁전에서 사는 게 답답해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던 그는 언젠가는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이사를 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루이 14세가 기다리던 기회는 불과 6년 뒤에 찾아왔다. 젊은 국왕의 돌발적인 행동을 사사건건 제어하던 마자랭 총리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는 대신들을 모아놓고 이전부터 속으로 꿈꾸던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베르사유 성을 재건축하겠소. ‘태양왕’인 짐의 영광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궁전으로 건설하는 거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 건설에 착수한 것은 개인적인 욕심 이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을 만들어 왕의 신권통치와 프랑스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파리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에서는 내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게 될 거야. 이를 통해 권력을 더 키울 수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정점에 자리 잡은 프랑스의 지위를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거야.’


루이 14세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서 내로라하던 건축가, 조각가, 엔지니어, 화가를 대거 고용했다.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베르사유 성을 절대주의를 반영하는 궁전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왕권의 신비를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라는 게 그의 지시였다.

“프랑스의 군주를 초자연적인 신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건축의 목표일세.”

베르사유 궁전의 건물이나 정원, 장식 중에서 우연히 또는 아무 목표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공정은 루이 14세의 인생을 둘러싼 이야기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복잡한 계획을 통해 진행됐다.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루이 14세는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많은 조신은 물론 법원 판사, 귀족, 시종 등 수천 명이 왕을 따라가서 여러 날을 보내곤 했다.

루이 14세는 조신들에게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행사에 반드시 참가하라고 강요했다. 왕이 베풀어 주는 특혜에 맛을 들인 귀족과 관료는 왕의 지시를 거부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새 궁전에 머무는 동안 궁전과 정원을 장식한 많은 그림, 조각을 끊임없이 보아야 했다. 왕권신수설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작품들이었다. 그들의 머리에는 루이 14세는 신이 내려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태양왕의 영광

“자네들이 ‘개구리 연못’을 만든 조각가 형제인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1668년 베르사유 궁전에 머물고 있던 루이 14세는 당시 유명한 형제 조각가 가스파드 마르시와 발타자르 마르시를 불렀다.

“특별히 부탁할 게 있어 자네들을 모셔오라고 했지.”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토나의 전설을 잘 아는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와 다이애나의 어머니인 레토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있는 ‘개구리 연못’의 주제를 라토나의 신화로 바꿔 새로 만들어주게.”

루이 14세의 아버지인 루이 13세가 처음에 만든 사냥용 성 앞에는 둥근 연못이 하나 있었다. 루이 14세는 성을 궁전으로 바꿀 때 연못을 궁전 안쪽으로 끌어넣었다.

마르시 형제는 이때 연못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분수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두 사람은 개구리 등 여러 동물 조각을 만들어 분수에 설치했다. 연못 주변에 달린 물 분출구 20개에는 납으로 만든 개구리 스무 마리를 달았다. 개구리의 입에서는 수조를 향해 물이 나오게 했다. 주변의 작은 연못 두 개에는 거북이와 도마뱀 24마리를 장식했다. 두 형제가 만든 이 분수에는 개구리 연못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라토나 분수. 라토나 분수.

루이 14세는 어느 날 신하들을 데리고 정원을 산책하다 개구리 연못을 보고 문득 라토나 신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형제를 다시 불러 라토나의 신화를 덧씌우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로마신화에 따르면 라토나는 거인족인 코에우스와 페베의 딸이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레토로 나오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유피테르와 동침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쌍둥이를 임신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피테르의 부인 유노는 분노해 라토나를 신의 세계에서 쫓아내 버렸다. 그녀는 인간 세상의 어떤 땅도 라토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명령을 어기는 땅에는 천벌을 내리겠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라토나는 유노의 분노를 피해 세상을 끝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그녀는 델로스 섬에 도착해서야 겨우 아폴로와 다이애나를 낳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델로스 섬에 정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유노의 분노를 피해 다시 달아나야 했다.

한참 동안이나 방랑하던 라토나는 어느 날 리키아 국경 지역에 도착했다. 지친데다 목이 심하게 말랐던 그녀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마침 바로 앞의 계곡에 물이 잔뜩 고인 연못이 보였다. 그런데 농부들이 앞을 가로막더니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라토나는 간절히 애원했다.

“왜 물을 마시지 못하게 막는 건가요? 물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답니다. 신과 자연은 모든 인간에게 공기와 빛과 물을 사용할 당연한 권리를 주었지요. 나는 모든 사람이 누리는 권리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나는 당신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구걸해야 하는군요. 지친 몸을 씻으려는 게 아니에요. 단지 목을 축이려는 것뿐이랍니다. 입이 말라붙어 말하기도 힘들 정도예요. 물은 내게는 신이 마시는 넥타르 같은 것이지요. 제발 물을 마시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저의 생명을 구해주는 게 됩니다. 가슴에 매달려 연약한 팔을 뻗고 있는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물을 마시게 해 주세요.”

“아무리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소. 당장 여기를 떠나시오.”

농부들의 닫힌 마음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즉시 떠나라고 했다. 라토나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자 농부들은 연못을 발로 짓밟고 손으로 물을 휘저어 도저히 마실 수 없게 만들었다. 라토나는 목마름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분노했다. 그녀는 손을 하늘 높이 들고 저주를 퍼부었다.

“앞으로 당신들은 영원히 연못의 흙탕물 속에서 살게 될 것이오.”

라토나가 말을 마치자마자 농부들은 개구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부 농부는 깜짝 놀라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목은 부풀어 올랐고 입은 넓어져 있었다. 머리는 어깨 쪽으로 쪼그라들었고 등은 녹색으로 변해 버렸다. 배는 둥글게 바뀌었다. 개구리가 된 리키아의 농부들은 그 이후 영원히 연못의 진흙탕에서 살아야 했다.

루이 14세가 개구리 연못을 라토나의 분수로 바꾸라고 한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일부 역사학자의 해석은 이렇다.

“라토나 분수는 루이 14세가 ‘프롱드의 난’을 진압한 것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루이 14세는 라토나와 그의 두 아이 아폴로, 다이애나가 겪었던 고난을 어릴 때 그와 어머니 앤 태왕후가 경험했던 고초와 동일시했다. 아폴로의 어머니인 라토나는 바로 앤 태왕후였다. 농부들이 개구리로 변신한 것은 왕권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자들에게 주어진 처벌을 상징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루이 14세가 라토나의 분수를 만든 결정적인 목적이 있었다. 바로 아폴로였다. 라토나를 앤 태왕후와 동일시한다면 아폴로는 바로 루이 14세가 되는 셈이었다.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었다. 따라서 짐은 ‘태양왕’이다.”


아폴로 분수. 아폴로 분수.

루이 14세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루이 14세가 태양왕이라면 프랑스는 물론 세상의 모든 신민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1663년 이전 프랑스에서는 아폴로의 이미지를 탁월한 시민을 찬사할 때 누구에게나 은유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루이 14세가 아폴로를 받아들인 뒤부터는 왕권신수설을 표현하기 위해 왕에게만 독점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라토나 분수 주변에는 거북이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첫 번째 단에는 변신을 겪는 농부와 개구리가, 다음 두 단에는 개구리가 설치돼 있다. 분수 꼭대기에는 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두 아이 즉 아폴로와 다이애나가 팔을 뻗어 농부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모습이다. 라토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서 입을 열어 저주를 내뱉고 있다.

라토나 분수를 지나 베르사유 정원의 맨 끝에 가면 아폴로 분수가 있다. 분수 한가운데에서는 대양 끝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아폴로의 전차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태양왕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조각이다. 이처럼 베르사유 궁전-라토나 분수-아폴로 분수를 일렬로 배치한 것은 루이 14세의 치밀한 의도였던 것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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