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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을 본 사람은 없다. 그래도 꾸준히 사랑받는 동물이 있다. 온순하게 풀을 뜯거나 포악하게 활보하는 대형 생명체. 수많은 어린이가 열광하고 다 큰 어른까지 호기심을 보이곤 한다.
공룡은 사라졌지만 익숙한 존재다. 만화 속 단골 주인공이며 영화 ‘쥬라기 공원’은 여전히 명작으로 꼽힌다. 인형이나 캐릭터 상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백악기 말기에 멸종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인류가 공룡의 모습을 추정하는 방법은 단 하나. 발자국이나 뼈 화석 등을 기반으로 생김새와 움직임을 유추한다. 최소 수천만 년간 퇴적층에 보존된 흔적을 통해 간접적인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특히 한반도는 백악기 공룡 흔적이 속속 드러난 땅이다. 1972년 경남 하동군 해안에서 공룡알 화석이 처음 발견됐다. 뒤이어 전남과 경남 일대에서 공룡 발자국, 뼈, 알 화석 등이 연이어 보고된 상태다.
■부산 해안에 드러난 공룡 발자취
백악기 공룡은 부산에도 여러 흔적을 남겼다. 2020년에도 기장군 일광면 신평소공원 일대에 발자국 화석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태종대와 백양산 등에 이어 기장군 해안가에도 그 증거가 드러난 셈이다.
신평소공원 공룡 발자국은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백인성 교수 연구팀이 처음 찾아냈다. 당시 대학원생 박정규 씨가 공룡이 걸어 다닌 흔적인 ‘보행렬’을 갯바위에서 발견했다.
백인성 교수 연구팀은 이듬해인 2021년 5~9월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기초학술조사’를 진행했다.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에서 화석 산지가 발견된 만큼 지질 유산적 특성과 가치를 연구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조사를 총괄한 백 교수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위원장을 역임했고, 1999년 경남 하동군에서 초식공룡으로 추정되는 ‘부경고사우루스’ 화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두 발과 네 발 공룡 흔적
연구 결과 신평소공원 일대에는 다양한 공룡 발자국이 있었다. 목이 길고 네 발로 걷는 ‘용각류’와 두 발로 걷는 ‘조각류’ 공룡까지. 추정되는 지층 나이는 대략 9000만 년 정도. 백악기 공룡 흔적이 남았다는 뜻이지만, 정확한 종류는 알기 어려운 상태다.
다만 발자국 모양과 위치 등으로 용각류와 조각류 구별은 가능했다. 이달 중순 현장에 동행한 백 교수는 “네 발로 걷는 용각류 보행렬은 앞발이 약간 반달 모양인 데다 뒷발보다 작다”며 “크고 둥그렇게 움푹 들어간 발자국도 용각류가 남긴 흔적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룡 보행렬이 불룩 튀어나온 이유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그는 “발자국이 찍힌 부분에 다른 성분이 채워지는 캐스트(cast) 상태가 된 것”이라며 “물이 들어왔다가 건조해지면 퇴적이 되는 원리”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이어 “경남 고성에는 침식에 의해 발자국이 찍힌 면이 드러난 곳도 있다”며 “교육이나 야외 전시를 위해 발자국 한족 정도는 퇴적층을 인위적으로 걷어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변에 찍힌 조각류 발자국은 상대적으로 모양이 뚜렷한 상태였다. 백 교수는 “두 발로 걷는 조각류 공룡 발자국은 발가락 3개가 구별될 정도로 선명하다”며 “신평소공원 일대 핵심 발자국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수각류 발자국까지 다양한 화석이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함께 발견된 공룡 뼛조각
발자국과 함께 주목해야 할 부분도 있다. 조사 과정에서 공룡 뼈 화석도 발견된 점이다. 백 교수는 “공룡 뼈 화석은 파편 상태로 한 점만 발견됐다”면서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나타나는 퇴적층에 뼈 화석이 같이 나오는 경우는 국내에서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편 상태인 공룡 뼈 화석은 길이 약 15cm, 두께 약 4cm 정도 규모다. 편광현미경에서 ‘망상골(cancellous bone)’ 조직이 관찰됐고, 뼈 화석이 산출된 돌과 대체로 같은 퇴적물이 채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룡 뼈가 화석으로 바뀌는 과정과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연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다는 없었다”고 말하는 빨간 암석
백악기 공룡 흔적만으로 이곳을 다 설명하긴 어렵다. 갯바위에서 발견된 ‘빨간 암석’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세한 석영 결정으로 만들어진 돌은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빨간 암석은 방산충으로 만들어진 ‘처트(Chert·규질암)’다. 방산충은 플랑크톤의 일종인데 처트는 바다에 사는 미생물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딱딱한 성질을 가진 방산충이나 주조 등이 처트의 성분이 된다.
처트는 한반도 공룡 시대에 ‘동해(East Sea)’가 없었다는 점을 증명할 증거로 꼽힌다. 백 교수는 “현재 한국 땅에는 빨간 처트의 모체가 되는 암석이 없다”며 “방산충 화석을 함유한 처트는 근원지가 일본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늘에서 돌이 갑자기 떨어지진 않는다”며 “백악기에 우리나라와 일본이 육지로 연결됐다는 점을 뜻하는 암석”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부터 일본 기원의 방산충 처트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경북 영덕군과 청송군 등에서 발견됐는데 과거 지형 특성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암석으로 꼽힌다. 학계에서는 현재 이러한 처트를 쉽게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
■호수 물결과 식물 줄기 흔적
신평소공원 갯바위에는 물결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당시 바다 대신 호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화석이다. 빨래판 같은 줄무늬 화석은 백악기 시대 강 하류 쪽 호수에서 잔물결이 치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물결무늬는 호숫가에 물이 차올랐다가 빠지거나 마르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남은 것으로 분석된다. 화석 주변에서는 공룡 발자국도 발견됐는데, 당시 공룡이 물을 마시기 위해 호숫가를 찾았을 가능성이 크다.
초식공룡이 먹이로 삼았을 식물의 흔적도 곳곳에 새겨져 있다. 당시 백악기에는 활엽수 대신 침엽수나 양치류 식물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 교수는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환경이 건조한 지대에서 물가에 살았던 식물로 추정되는 화석이 나왔다”고 말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나온 퇴적암층에서 먹이가 된 식물 화석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또한 국내에서 드문 사례다.
■강소형 관광지로 활용 기대
신평소공원 일대 공룡 흔적은 비교적 뒤늦게 알려졌다. 공룡 발자국이 더 많이 발견된 지역도 있지만, 이곳 역시 현장 학습이나 지질 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진 상태다.
학계에서는 ‘강소형 관광지’로 거듭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공룡 발자국과 뼈, 새 발자국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물결무늬 등 다양한 화석이 비교적 좁은 공간에 밀집해있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한 변형을 증명하고 과거 지형도 알 수 있는 암석도 찾을 수 있다.
특히 도심에서 접근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백 교수는 “1~2시간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한반도 공룡 시대 당시 환경, 생태, 사건 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며 “주변에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전문적인 해설사가 안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은 지질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장군청은 지난해 신평소공원 일대 연구 용역을 맡긴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안내판 두 곳 이상을 설치하기로 했다. 다만 관광 자원으로 삼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기장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관계자는 “올해에는 안내판 등 조형물 설치 예산만 반영이 됐다”며 “관광 자원으로 삼으려면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정밀 학술 조사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며 “문화재 지정 추진 등은 아직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신평소공원 일대는 관광지나 교육 장소로 활용할 기반을 갖춘 곳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백악기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