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심장 70여 년 청와대, 시민 품으로

입력 : 2022-03-20 17:22:25 수정 : 2022-03-20 19: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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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시민들이 청와대를 보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시민들이 청와대를 보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대신 지금의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는 ‘시민공원’ 형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5월 10일 개방해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를 모두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70년 넘게 권력의 정점에서 굵직한 현대사에 등장하던 청와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현재 청와대 자리(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짓고 총독관사로 이용했다. 이후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짓고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로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된 것이 청와대의 시작이다.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靑瓦臺)의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이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곳을 사용하면서 청와대는 명실상부한 ‘권부의 심장’으로 통했다.

 청와대 보안이 크게 강화된 것은 1968년 1월 12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대원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부 요인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 뒷산으로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 영향이 컸다. 당시 이들이 사용한 북한산 침투로는 이른바 ‘김신조 루트’로 불리며 2009년까지 41년 동안 폐쇄됐다.

 이런 폐쇄성과 비효율로 사실 역대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새 대통령이 주요 공약으로 청와대 이전을 검토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청와대가 아닌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무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실제 청와대 집무실은 옮기지 못하는 대신 청와대 주변 도로와 인왕산을 개방했다. 안가를 철거한 뒤 사랑방도 개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당선 직후인 1998년 초 청와대 외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과천 제2정부종합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중단했다. 결국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청와대 내부 구조를 바꾸려 했으나 이 역시 중간에 그만둔 바가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초반 서울청사 별관에 집무실 등을 이전하려다 국회 승인 문제와 비용 문제 등이 부상하며 이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이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길 것을 공약했고,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을 자문위원으로 하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 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검토 과정을 거쳤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집권 3년차에 백지화했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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