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부산’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독자들의 사연과 <부산일보> 소장 사진·기사로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오늘날 부산의 백화점 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시나요? 롯데, 신세계, 현대, NC 정도로 압축될 수 있겠네요. 모두 부산 향토 기업이 아닌 유통 대기업이 소유한 백화점이죠.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산·경남의 향토 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미화당백화점, 태화백화점, 유나백화점, 세원백화점, 부산백화점, 신세화백화점 등등. 부산 어느 곳에 살았느냐에 따라 추억이 있는 백화점도 달랐겠죠?
부산 곳곳에 있던 향토 백화점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씩 스러지다 대기업 백화점의 부산 진출과 IMF로 인해 2000년대에는 모두 문을 닫게 되는데요. 새 학기나 명절 때 들뜬 마음으로 새 옷, 새 신발을 사러 갔던 그 시절 백화점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볼까요?
■ 그때 그 시절
#미화당백화점, 유나백화점
핸드폰도 없고 삐삐도 없었던 학창 시절, 미화당백화점과 유나백화점은 그 시절 남포동에서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죠. 지금도 택시를 탈 때 '옛날 미화당백화점 앞', '옛날 유나백화점 앞'이라고 말하면, 젊은 기사들도 다 알아들으시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 부산의 랜드마크가 사라진 게 너무나 아쉽네요. / 부산 서구 51세 곽영례
#태화백화점
어릴 때 경남공고 근처에 살아서 태화백화점이 가까웠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태화백화점 새로 지었을 때 엘리베이터 타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태화백화점에 찜질방도 생겨서 엄마랑 목욕 갔다 왔던 기억도 나네요. 남들은 시내라 다 꾸미고 오는 데 저는 목욕 가방 옆구리에 들고 갔었네요. 삐삐 나오던 시절에는 태화백화점 앞 공중전화 부스에 삐삐 듣느라 줄 선 모습도 기억나네요. 롯데·현대 백화점 생기기 전만 해도 나름 명품 백화점이었고 손님도 많았는데 안타까운 일도 있었고, 없어져 아쉽습니다. / 부산 동구 43세 노진희
#세원백화점, 부산백화점
진주에 살았지만, 친가·외가가 전부 부산이라 부산에 정말 자주 갔어요. 90년대 중·후반 버스 터미널과 같이 있던 세원백화점, 부산백화점의 추억은 20년이 지나도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습니다. 부산백화점 1층 구두 냄새랑 롯데리아도 기억나고요. 특히 세원백화점에는 맥도날드가 있었는데, 진주엔 없어서 무조건 들렸었죠. 당시에 해피밀 장난감 모으느라요. 백화점 문 닫은 뒤로는 해피밀 세트 못 먹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 터미널도 이전해서 노포동 터미널 처음 이용했을 땐 '내가 알던 부산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경남 진주시 32세 이현*
■ 향토 백화점의 번영과 쇠퇴
부산의 첫 백화점은 중구 광복동의 '미화당백화점'이었습니다. 1949년 미화당이란 이름으로 운영을 하다 1969년 화재로 건물이 불에 타 1970년 신축 재개장을 했습니다. 1984년 본관, 별관을 개축해 운영했죠. 미화당 백화점엔 용두산 공원으로 연결된 철제 다리도 있어서 백화점 이용객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곳이었습니다.
1980년대 상권의 중심이었던 남포동과 광복동, 그중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보니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했죠. 하지만 1990년대 중심 상권이 서면으로 옮겨간 데다, 1995년 부산에 현대·롯데 백화점이 들어선 이후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001년에 문을 닫습니다. 미화당백화점이 있던 자리엔 현재 신발가게와 미용실 등이 입점했는데요. 아직도 이곳을 '옛 미화당 자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화당백화점과 함께 중구 남포동 권역에서 활약하던 백화점이 또 있습니다. 1981년 중구 신창동 동주여고 앞에 들어선 유나백화점입니다. 1982년 삼미그룹이 유나백화점을 인수했고 80년대 미화당 백화점과 함께 쌍벽을 이뤘습니다. 서울 이태원에도 백화점을 내고 1996년 11월엔 부산 다대포에도 분점을 냈죠. 하지만 1997년 삼미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유나백화점 매각이 추진됐고, 결국 1999년 유나백화점도 문을 닫습니다.
1983년 11월, 부산 향토 백화점계의 거물인 태화쇼핑이 문을 열었습니다. 1985년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면서 부산의 중심 상권이 광복동에서 서면으로 이동하던 때였는데요. 서면 대로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등에 업고, 부산 매출 1위 백화점으로 우뚝 섭니다.
태화백화점은 1991년 4월 본관을 확장하고, 1994년 11월엔 태화쇼핑을 상장하기도 했는데요. 1996년 신관도 개점하면서 덩치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1995년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문을 열었고, 그 이후로 매출은 급격히 감소해 갔습니다. 규모 확장으로 인한 자금난까지 겪으면서 어려움이 가중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화쇼핑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해 큰 충격을 주기도 했죠.
1999년 태화백화점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당시 향토기업인 태화백화점을 살리기 위한 시민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운영되긴 했으나, 결국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1년 결국 파산하고 맙니다. 지금은 (주)텐커뮤니티가 인수해 지금은 '쥬디스 태화'로 운영되고 있죠.
1991년대 동래에 생긴 '세원백화점'은 개점 1년 만에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부산지역 전체 매출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곳은 특히 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과 함께 있어, 부산을 오가는 이들이 자주 방문한 곳이기도 했죠. 당시 보기 귀했던 맥도날드도 입점해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97년 세원백화점도 부도를 피해 가지 못하고 2000년 문을 닫았는데요. 이 자리에는 현재 롯데백화점 동래점이 들어와 있습니다.
1992년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도 향토기업이 운영하는 '신세화백화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광안동이 남구에 속해 있을 시절입니다. 이곳은 운영 기업이 (주)세화수산과 세화유통이다 보니, 이 백화점은 다른 백화점에 비해 식품 판매 비중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게다가 광안동엔 백화점이 없어, 인근 주민들이 자주 찾는 백화점이었는데요. 1996년엔 사하구 괴정동에 2호점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대기업 백화점의 부산 진출 이후 운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6년 문을 닫습니다.
1994년 해운대에도 첫 백화점인 '리베라백화점'이 생깁니다. 당시 리베라백화점은 지상 16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1층부터 7층까지는 백화점, 8층부터 16층까지는 호텔로 썼습니다. 해운대에도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부산의 백화점 상권이 다섯 군데로 나뉘게 됐는데요. 중구는 미화당·유나, 부산진구는 태화, 해운대구는 리베라, 동래구는 세원·부산, 남·수영구는 신세화 이렇게 말이죠. 리베라백화점은 해운대 인구를 타깃으로 매출을 꽤 올렸지만, 1996년 모기업의 부도로 휘청이게 됩니다. 2003년 리베라백화점이 있던 자리엔 세이브존이 들어섰습니다.
■ 그때 그 사람
취재진은 부산의 마지막 향토 백화점, 신세화백화점을 운영한 (주)세화씨푸드 배기일 회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배 회장은 “당시 다른 백화점도 많았지만, 신세화백화점은 식품 코너와 수산가공품 쪽은 어느 백화점보다 뛰어났다고 자부한다”며 웃었습니다.
배 회장의 말처럼 세화백화점은 모기업이 (주)세화수산이다 보니 수산물 쪽에 확실한 강점을 보였습니다. 또 배 회장이 식품 쪽 전공을 하다 보니 다른 백화점보다 식품관이 월등히 뛰어났다고 하네요.
세화백화점의 전신은 ‘세화유통’이었습니다. 배 회장은 세화백화점을 시작하기 전, 1985년 동래구 온천동 럭키아파트 상가에 세화유통이라는 슈퍼마켓을 운영했는데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세화유통뿐 아니라 함께 운영하던 세화수산도 수출 1000만 불을 달성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죠.
유통업에 관심이 많았던 배 회장은 세화유통의 규모를 키워 1992년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신세화백화점’을 열게 되는데요. 지상은 백화점으로, 지하에는 세화유통이 들어갔습니다. 신세화백화점은 건물 외관에 한자로 ‘신세화(新世華)’라고 써뒀는데요. ‘새로운 세화’의 뜻과 함께 ‘세계화’의 의미도 담았다고 하네요.
당시 남구, 수영구 인근의 유일한 백화점이다 보니 장사도 꽤 잘됐다고 합니다. 특히 명절 대목에는 하루 매출이 수십억을 기록할 때도 있었다고 하네요. 1996년엔 신세화백화점 괴정점도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995년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범일동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있긴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요 브랜드가 빠져나간다는 거였습니다. “롯데백화점이 생기고 나서 ‘키 테넌트(상가나 쇼핑몰에 고객을 끌어모으는 핵심점포)’가 대부분 빠져나갔죠. 롯데·현대 백화점은 비유하자면 바다 생물을 한꺼번에 빨아들이는 ‘정치망’ 같았습니다.”
거대자본이 소비자를 빨아들이면서 신세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향토 백화점이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 향토백화점이 운영난에 허덕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은행 대출도 막히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부산의 1등 백화점이었던 태화백화점마저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태화백화점의 회장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일은 배 회장에게도 아주 큰 충격이었습니다.
‘맞설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직감한 배 회장은 결국 고심 끝에 2005년 신세화백화점을 매각하게 됩니다. “흐름이 워낙 거세서 이길 수 없더라고요. 세화수산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매각할 수밖에 없었죠.”
배 회장은 아직도 그 당시 재벌 자본으로 인해 향토 백화점이 스러졌던 그 순간들이 아쉽습니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 결정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 시절 세화유통, 신세화백화점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 좋은 곳에서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배 회장에게는 고배를 마신 사업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신세화백화점을 기억해주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산 광안리나 괴정, 온천동 쪽에 살던 분들은 아직도 신세화백화점, 세화유통 얘기를 많이들 해요. ‘특히나 식품이 좋아서 많이 갔다’는 이야기 들으면 아직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 당시에 세화유통, 신세화백화점 이용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대영극장’, ‘국도극장’, ‘부산극장’, ‘동명극장’, ‘대한극장’, ‘보림극장’, ‘삼성극장’, ‘삼일극장’, ‘온천극장’ 등 부산 추억의 극장·영화관에 대한 독자분들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부산일보’ 계정 관련 게시글에 댓글 남겨 주시거나 메시지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yool@busan.com 메일함도 열려 있습니다.
글=서유리 기자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