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젤렌스키는 "개자식들"이라 욕할 자격이 있는가

입력 : 2022-04-3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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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우크라이나 현실 우리의 반면교사 삼아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군을 향해 “개자식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순항미사일 공격에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생후 3개월 아기까지 숨진 데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일이라 젤렌스키의 분노는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한 번쯤 돌아볼 일이 있다. 젤린스키가 과연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로운지, “개자식들”이라 욕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공동묘지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한 노인이 러시아군에 살해된 아들의 관을 앞에 둔 채 오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공동묘지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한 노인이 러시아군에 살해된 아들의 관을 앞에 둔 채 오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책임은 오롯이 푸틴에게? 다른 시각도 있다

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가 듣는 소식의 대부분은 미국과 서유럽 등 서방 언론을 통해 나온다. 거기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악의 화신이다. 집단 학살에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하지만 러시아와 푸틴에 대한 평가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1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TV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민간인 죽음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고 부르지 말자는 제안을 했다. 일방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던 국제 여론과는 결을 달리하는 발언이었다. 젤렌스키는 마크롱을 비난했지만, 기실 이런 시각이나 움직임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미국은 전쟁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 제제를 각국에 강요했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 대부분의 나라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스라엘,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도 제재에 소극적이다.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탄하는 결의안에도 북한은 아예 명시적으로 반대했고, 중국, 인도, 이란 등 35개 나라는 기권을 선택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셈이다.

러시아군에 패색이 짙으며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에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일부 통신의 보도에 다르면 러시아 국민들의 이번 전쟁에 대한 지지가 생각보다 훨씬 크며 전쟁 승리에 대한 전망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푸틴이 전쟁의 수렁에 빠져 나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건 순전히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바나나 모자를 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묘사한 그림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독일 쾰른의 한 주택가 외벽에 그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나나 모자를 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묘사한 그림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독일 쾰른의 한 주택가 외벽에 그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고찰해 봐야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실은 무엇인가? 콕 짚어 단정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민족 구성, 우크라이나에서의 반러시아 성향 네오나치즘 부상 등 복합적 요인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나토는 기본적으로 군사 동맹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을 위시해 서유럽 여러 나라들이 결성했다. 나토는 소련 해체 이후 동쪽 즉 러시아 방향으로 확장해 왔다. 그 결과 폴란드 등 과거 소련 일원이었던 나라들 대부분이 나토에 가입했고 남은 곳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정도다. 러시아로선 군사적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푸틴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나토의 동진,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합동 군사훈련을 이유로 들었다.


■정치 입문 1년 만에 대통령 된 코미디언

널리 알려진 대로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2015년 ‘슬루가 나로’, 우리말로는 ‘국민의 종’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 제작과 주연을 맡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드라마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풍자극이었다. 정치 이력이 전혀 없었던 젤렌스키는 이 드라마로 인해 2018년 정계에 입문, ‘국민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까지 만들었다.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2019년 4월 대선에선 73%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반짝 인기였다. 젤렌스키는 전문성과 자질이 부족한 측근과 지인을 정부 요직에 임명했고, 이후에도 정치적 행보에서 난맥상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실망했다.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올해 1월엔 23%에 머물렀다.

젤렌스키는 떨어진 지지율을 대외적 이슈를 통해 회복하려 했다. 나토 가입은 좋은 소재였다. 2008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 하자 그에 반발한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를 성토했다. 젤렌스키는 이를 배경으로 친서방을 표방하면서 나토 가입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나토에는 영토분쟁이 있는 국가는 회원국으로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가입 대상이 될 수 없었고,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가입을 반대했다. 여하튼 젤렌스키의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를 자극했고, 이후 상황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로 진행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 3월 29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 3월 29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 예상하고도 나토 가입 강행한 이유는?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젤렌스키의 정치적 입지는 탄탄해졌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됐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뜻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젤렌스키는 조국 수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때 20% 아래로 떨어졌던 그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90%를 넘었다.

전쟁 지도자로 부상한 젤렌스키의 위상을 굳이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가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 전쟁을 막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전쟁이 젤렌스키의 정치적 입지는 다졌겠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국민이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젤렌스키는 나토 가입에 속도를 더하면서 2월 28일에는 유럽연합(EU) 가입 신청서에도 서명하고 특별 절차를 동원해 가입을 즉시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타는 불에 기름을 얹은 격이다.

그런데 3월 15일 젤렌스키는 이전과는 다른 발언을 했다. “우리는 수년 동안 (나토 가입) 문은 열려 있지만 들어갈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이것은 사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토 가입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실이라면 젤렌스키는 정치적 목적으로 전쟁을 이용했고 그 결과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국민은 전쟁 영웅보다 평화의 사도를 원한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주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지를 존중하고 그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어쩌면 지도자 선출을 우습게 본 업보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TV 드라마에서 대통령 연기를 했을 뿐인 코미디언을 진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을 낮추보려는 게 아니다. 정치적 자질과 능력에 대한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TV가 보여 준 허상에 열광했고, 그 결과가 전쟁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은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떤 형태로 종결되든 젤렌스키는 나라의 영웅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젤렌스키가 전쟁을 막지 못한, 어쩌면 전쟁을 초래했을 수도 있는 지도자임은 분명하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고 나토 가입 시도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음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토 가입을 강행했고, 전쟁은 일어났으며, 생후 3개월 된 아기까지 목숨을 잃는 참상이 벌어졌다.

전쟁은 원인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국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는 전쟁의 영웅보다는 평화의 사도다. 이는 우크라이나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 형편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북 간에 ‘선제 타격’과 ‘핵 무력 사용’이라는 살벌한 용어가 맞부딪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70여 년 전에 지금 우크라이나보다 더한 참상을 겪고도 그런다. 심히 경계할 일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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