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읽은 기사 하나가 생각납니다. 일상회복 기대감에 부풀었던 자영업자들이 정작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 가게 문을 닫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기사는 갑작스레 많아진 구인 공고, 청년인구 감소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현상을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일 꺼리고 보조금 기대”
‘알바 구인난’ 기성세대 편견
인턴 경력은 기본인 취업시장
스펙 맞추려면 알바 ‘언감생심’
하지만 글을 읽어 내려가다 멈칫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일을 싫어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특성이 알바 구인난의 원인이라는 뉘앙스가 글에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자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동아리 활동을 즐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한 호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는 청년을 향한 여러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주로 정부가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의 보조금을 퍼 주기 때문에 청년이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죠. 그 속에는 “요즘 것들은 항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 때문에 배가 불렀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청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저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화를 나눈 이들은 돈은 없지만 취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토익 학원, 대외활동 등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되는 ‘스펙 쌓기 마라톤’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장시간 이어지는 아르바이트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였죠. 몇 달 전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취업준비생 후배는 “알바를 하면 당장의 생활비는 벌 수 있지만 취업 준비를 할 시간이 없어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서 “돈을 최대한 아껴 쓰다 돈이 떨어질 때쯤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초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편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취준준생’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취업준비 준비생을 일컫는 이 용어는 취업 준비에 필요한 여유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을 뜻합니다. 과거에 비해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생긴 씁쓸한 용어죠.
취준준생들은 일자리를 찾을 때도 자기소개서에 한 줄 덧붙일 수 있을 만한 곳을 필사적으로 찾는다고 합니다. 알바도 일종의 양극화를 겪고 있는거죠. 다른 한편으로 자기소개서에 경험을 풀어내기는 어렵지만 각종 공부를 할 수 있는 독서실 아르바이트의 경우 최저임금을 못 받더라도 엄청난 인기로 금방 마감된다고 합니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에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대화를 나눈 한 대학교의 취업 상담사는 면접관들이 지원자에게 “왜 인턴을 1개밖에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한다고 전해줬습니다. 인턴이 ‘금턴’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해진 상황에서 청년들은 두 개 이상의 인턴 경력을 요구하는 면접관의 기대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같은 기관에서 인턴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다음 인턴을 준비한다는 ‘인턴 갈아타기 모임’ 이야기도 이상하지 않게 들립니다.
살아온 경험을 모두 끄집어내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현실에서 큰 고민 없이 아르바이트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이란 요즘 청년들에게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주 전 한 공기업에서 면접을 본 친구는 “내가 말하고 있는 사이 한숨을 쉰 면접관 때문에 면접장을 나오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습니다.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까지 취업 준비에만 매달려 온 그는 “‘지금까지 경력도 없이 뭐 했느냐’고 묻는 면접관의 눈초리가 따가워 아무 말도 못 했다”면서도 “그 말에 나 스스로도 공감하고 있는 내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애써 담담한 듯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정말 배가 불러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배부른 청년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