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지역화폐인 ‘오륙도페이’를 만든 남구청이 정작 업무추진비와 급량비를 더이상 오륙도페이로 결제하지 않기로 했다.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업체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남구청은 설명하지만, 발행기관 스스로 지역화폐 사업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 남구청은 지난 8일부터 업무추진비와 급량비를 지출할 때 오륙도페이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영수증카드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남구청은 지난해부터 급량비와 업무추진비를 오륙도페이로 결제해왔고, 올해 2월부터 200만 원 이하 결제 대금에 대해 현금영수증카드 결제 방식을 병행 도입했다. 이어 4월부터는 300만 원 이하로 현금영수증카드 1회 결제 한도를 높였다.
남구청이 밝힌 오륙도페이 사용 중단 이유는 예산 집행 방식이 불편하다는 구청 내부의 불만 때문이다. 오륙도페이는 충전할 때 예산을 1차로 집행하고, 지출 후 잔여액은 다시 예산에 도로 넣는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 번거롭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결제를 한 뒤 지출 증빙서류에 영수증만 첨부하면 예산 집행이 완료된다. 현금영수증카드는 사실상 계좌 이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출증빙용 현금영수증을 사업자에게서 먼저 발급 받은 뒤 구청이 사업자에게 계좌로 대금을 입금하게 된다.
또 오륙도페이는 체크카드의 일종으로, 한 번 결제할 때마다 업체가 운행대행사 코나아이에 결제대금의 0.25%를 수수료로 물어야 한다. 현금영수증카드를 활용하면 수수료가 아예 발생하지 않아 업체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남구청 측 설명이다.
그러나 오륙도페이 발행기관인 남구청이 오륙도페이 사용을 중단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급량비는 시간 외 근무 공무원의 식비로, 업무추진비는 통상 식비, 다과비 등으로 쓰여 지역 밀착도가 높은 예산 항목이다. 발행기관이 여기에 지역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현금영수증카드는 오륙도페이와 달리 남구로 사용처가 한정되지 않아 지역화폐 사업의 취지와도 거리가 있다. 남구청은 2020년 8월 지역 자금 유출을 막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오륙도페이를 출시하고, 재난긴급생활지원금을 오륙도페이로 지급하는 등 지역화폐 사용 촉진에 힘써왔다.
오륙도페이 활성화 정책에 맞춰 이용객에게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스타가맹점’으로 등록한 소상공인은 우려를 드러낸다. 남구청이 오륙도페이 결제를 중단한 게 향후 사업 자체를 축소하려는 준비 작업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남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 모 씨는 “방문객 3분의 1은 오륙도페이로 결제할 만큼 이미 효과가 검증된 사업이 축소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구청은 소상공인에게 도움을 주면서 행정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남구청 관계자는 “현금영수증카드도 지출 증빙 과정이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소상공인 부담 수수료가 아예 들지 않는다”며 “신용카드에서 오륙도페이로, 다시 현금영수증카드로 점점 더 소상공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명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