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추적은?” 안전 시스템까지 아낀 알뜰폰, 참변 못 막았다(종합)

입력 : 2022-08-04 19:09:51 수정 : 2022-08-04 19: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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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30대 여성 피살 사건 계기
알뜰폰 위치 확인 사각지대 논란
실시간 추적하는 통신사와 달리
공조 체제 없고 야간·주말 공백
가입자 1100만 명 위험에 노출
경찰청 뒤늦게 보완책 마련 속도


긴급 상황 발생 시 별정통신사 ‘알뜰폰’ 이용자의 실시간 위치 추적이 되지 않는데도 당국이 수년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알뜰폰 판매업소 매장. 부산일보DB 긴급 상황 발생 시 별정통신사 ‘알뜰폰’ 이용자의 실시간 위치 추적이 되지 않는데도 당국이 수년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알뜰폰 판매업소 매장. 부산일보DB

‘울산 30대 여성 피살 사건’을 계기로 실시간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소위 ‘알뜰폰(별정 통신사)’의 안전상 허점(부산일보 8월 3일 자 11면 등 보도)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범죄 구호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법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부산일보〉가 울산 30대 여성 살인사건의 신고·대응 과정을 시간대별로 확인한 결과, 위치 추적을 둘러싼 피해자의 다급한 목소리, 경찰의 곤혹스러운 상황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위치 추적 사각지대를 방치한 허술한 안전 시스템이 시민 생명과 직결되는 치안 공백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시간대별 상황을 정리하면, 지난 1일 오후 11시 10분 피해 여성 A 씨는 다급히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A 씨는 당시 “위협을 느꼈거든요. 지금 주소가 어디냐 하면…위치 추적 안 돼요?”라고 경찰에 되물었다. 이후 남성에게 위협받은 듯 “나가라! 놔라!”고 소리쳤고 비명이 울리며 전화가 끊어졌다. 이 여성이 알뜰폰을 쓰면 위치 추적이 어렵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경찰은 곧장 피해자에게 다시 연락했지만,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응답이 전혀 없었다.

6분 뒤, 경찰 요청으로 신고자의 기지국 위치 정보가 도착했다. 경찰은 기지국 주변 수색을 진행했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 도무지 피해자 위치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통신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11시 49분 가입자 정보를 확인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다. 평일 야간이어서 해당 별정 통신업체와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범인이 자수한 시각은 이튿날 오전 1시 무렵. 약 2시간 가까이 위치 추적에 실패한 경찰은 결국 피의자와 동행해 범죄 현장에서 이미 주검이 된 여성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신고 전화를 기반으로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했다면, 생명을 구할 일말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참극이 빚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당국과 정치권의 의지 부족이 낳은 미흡한 제도에 있다. 수사기관 공조나 정보 제공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사실을 수년 전부터 알면서도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구조가 다른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먼저 경찰, 소방 등은 긴급신고를 접수하면 위치정보법 제15조에 따라 통신사로부터 위치정보를 제공받는다.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경찰청, 소방청과 협약해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등을 통해 위치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고 있다. 24시간 당직 시스템도 운영한다.

반면 전국의 50여 개 중소 알뜰폰 업체는 이런 공조 체제가 없고, 제공 방식도 까다롭다. 업체가 수사기관으로부터 정보 제공 요청을 받으면 통신망을 빌려준 이통사에 전달, 위치정보를 받아 공유한다. ‘수사기관→알뜰폰 업체→이통사→알뜰폰 업체→수사기관’으로 단계가 복잡한 만큼, 시간이 지체되는 구조다. 이통사가 알뜰폰 업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가입자 정보를 확인해도 되지만 법적 권한이 없고, 개인정보 제공을 놓고 또 다른 법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는 응대 직원을 두지 않아 공백이 생길 때도 많다. 영세한 업체 입장에서 인건비가 부담스럽고, 법적 의무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고물가 영향으로 알뜰폰 가입자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6월 기준 11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은 여전히 긴급 상황 시 위치 추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민 5명 중 1명이 알뜰폰을 쓰는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든 울산 사건처럼 피해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

정부도 울산 사건 이후 알뜰폰 이용자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자 대책 마련에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경찰청은 한양대학교 연구팀 주관으로 LTE 정보만으로도 구조요청자의 휴대전화 단말기 위치를 오차범위 20m 까지 추적할 수 있는 ‘구조요청자 정밀 측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모든 구조요청자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경찰청은 또 알뜰폰 업체에서 비상 인력을 쓰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가입자 정보를 주고받는 ‘QR팩스’ 사업을 올 연말까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야밤에 발생한 울산 사건도 위치 추적에 실패한 뒤 차선책으로 가입자 정보를 확인하려 했지만 알뜰폰 업체에 상주 인력이 없었다. 경찰청은 실시간 위치 추적과 함께 ‘QR팩스’ 사업을 보완책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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