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고리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건식 지상 저장시설 건설(임시 저장소)을 추진면서 정치권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고준위 방폐장 부지와 운영 시기를 조속히 확정하지 않을 경우, 기존 원전 지역 내 임시 저장소가 사실상 영구 방폐장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당국의 임시 저장소 추가 건설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29일 현재 국회에는 고준위 방폐장 설치와 관련해 모두 3건의 법안이 계류돼 있다. 국민의힘 김영식과 이인선 의원이 지난달 30일과 31일 낸 것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지난해 9월 15일 발의한 것이다. 이들 법안은 크게 보면 국무총리 소속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설치한 뒤 공론화를 통해 방폐장 예비후보자를 선정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를 확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인선 의원 안은 방폐장 유치 지역에 대한 특별지원금 지원과 공공기관 이전, 지역주민 우선 고용 등의 인센티브 제공을 강조했다. 해당 안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의 책무로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조속히 확보한다’는 문구도 담았다.
원자력 학계가 참여한 김영식 의원 안은 2035년까지 방폐장 부지를 확보해 2050년부터 운영하며, 설계수명에서 연장된 ‘계속 운전’ 기간에도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산업부가 밝힌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2060년에 처분장 운영이 가능한데, 이 법안은 운영 시작 시점을 10년이나 앞당긴 것이 핵심이다.
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건설·운영 중인 발전용 원자로의 ‘설계수명 기간’에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만 저장하도록 규정한 것이 앞선 여당 의원의 법안과 차이를 보인다. 저장 대상을 ‘설계수명 이내의 가동분’으로 제한하고 다른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폐기물을 옮겨올 수 없도록 명시한 것도 특징이다.
여당 안은 윤석열 정부의 원전 육성 정책에 따라 운영 허가가 만료된 원전의 계속 운전을 전제했지만, 민주당 안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근거해 원전의 수명이 연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했다. 소관 상임위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입법 논의도 공회전할 수 있는 것이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