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만난 억새 바다, 바다와 나란히 갈대 바다

입력 : 2022-10-05 06:00:00 수정 : 2022-10-05 18: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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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울산 간월재 은빛 억새 평원 환상적
부산 다대포 ‘고우니 생태길’에는 드넓은 갈대밭


울산 간월재는 억새로 이름난 곳이다. 파란 하늘 아래 은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울산 간월재는 억새로 이름난 곳이다. 파란 하늘 아래 은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단풍과 억새 혹은 갈대일 것이다. 빨갛고 노란 단풍이 강렬한 매력이라면 금빛 은빛 억새와 갈대는 은근한 매력이다. 억새와 갈대는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고 지고 생김새도 비슷해 구분하기 쉽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구별 방법은 자라는 장소다. 억새는 주로 산이나 들에 자라고 갈대는 물가에서 자란다. 산의 억새와 물가의 갈대, 닮은 듯 다른 두 풍경을 찾아갔다.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빛 억새 바다

산속에 환상적인 억새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어쩌랴. 산을 오르기로 했다. 드넓은 억새평원을 품은 울산 간월재는 ‘영남 알프스’에 속한다. 영남 알프스는 경북 경주시와 청도군, 울산 울주군, 경남 밀양시와 양산시 등 5개 시·군에 걸쳐져 있는 9개 산을 이른다. 해발 1000m 이상인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운문산, 문복산, 고헌산이 주인공들. 산세와 풍광이 유럽 알프스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간월재로 올라가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가장 짧고 완만하다고 알려진 코스를 찾았다. 울주군의 ‘배내2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출발하면 간월재까지 거리는 6km쯤이다. 억새 바다를 찾아 떠나는 길의 초입에서 만난 나무들은 아직 푸른색이 짙다. 여름인가 가을인가 싶을 만큼 낮의 햇빛은 뜨거웠다. 하지만 발걸음이 늘수록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과 나무에 가을 색이 칠해지고 있는 게 보인다.

자갈과 콘크리트가 깔린 임도는 걷기에 큰 부담이 없다. 등산이라기보다는 트레킹에 가깝다. 엄마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는 아이들, 가족, 커플, 친구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같은 곳을 향해 즐겁게 걷는다. 길 양쪽에서 간간이 만나는 무릎 아래 키 작은 꽃들은 잠시 앉아 쉬어갈 이유가 되어준다.


억새 평원에서 바라본 간월산. 왼쪽 건물은 대피소, 오른쪽 박공지붕 건물은 휴게소이다. 억새 평원에서 바라본 간월산. 왼쪽 건물은 대피소, 오른쪽 박공지붕 건물은 휴게소이다.
간월재로 오르는 임도에서 만난 꽃향유. 간월재로 오르는 임도에서 만난 꽃향유.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30분쯤이 되자 길가에 억새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스르르 몸을 흔들며 ‘어서 와’ 인사한다. 쨍하게 파란 하늘 아래 겹겹이 펼쳐진 산 풍경도 장관이다. 미리 마중 나온 억새가 점점 늘어난다 싶더니 어느 순간 억새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에 자리 잡은 간월재는 배내골 주민, 울산 소금장수, 언양 소장수, 장꾼들이 줄을 지어 넘었던 고개다. 주민들은 10월이면 간월재에 올라 억새를 베어 억새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은빛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느려진다. 맛있는 것은 아껴 먹고 싶은 것처럼 아껴 두었다가 천천히 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억새 풍경에 풍덩 빠지기 전 먼저 ‘간월재 휴게소’를 찾았다. 뾰족한 박공 지붕을 얹은 휴게소는 주변 풍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컵라면과 구운 계란 한 줄을 들고 휴게소 앞 덱 바닥에 앉았다. 발아래 탁 트인 전망에 속이 뻥 뚫린다.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억새 바다로 뛰어들었다. 억새 군락지 사이로 나무 덱이 깔려 있어 편안하게 억새 파도를 즐길 수 있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펼쳐진 억새가 마음을 뺏는다. 걸어 올라온 수고가 순식간에 뿌듯함으로 바뀐다.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누구라도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바람이 불어 억새가 흔들릴수록 마음은 더 편안해진다. 저 멀리 억새는 반짝반짝 은빛으로 물결치고 코앞의 억새꽃은 포근함을 준다. 억새 바다를 가슴에 실컷 품은 뒤라 그런지 내려오는 길은 길지 않게 느껴졌다.


■노을 붉게 물들 때 더 멋진 바다 옆 갈대밭

부산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은 일몰 명소로 유명하다. 여름 휴가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해운대와 광안리와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한여름 물놀이를 즐기는 이도 많지만, 노을이 지는 저녁 시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더 많다. 아파트를 등지고 있어 보이는 것은 탁 트인 바다와 하늘뿐이다.

몰운대에서 다대포 해변공원, 고우니 생태길, 아미산 전망대, 홍티선착장, 을숙도 조각공원을 지나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 이르는 12.2km ‘사하 선셋로드’는 부산의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 도보 여행길이다. 그중 생태 탐방로인 ‘고우니 생태길’에서 드넓은 갈대밭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노을이 내려앉을 때 ‘썸’ 타는 이와 함께 걸으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주황빛에 물든 바다와 황금빛 갈대밭,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한번에 즐길 수 있으니 옆 사람이 누구더라도 행복할 듯하다. ‘고우니’는 곱다, 고운 고니, 고운 사람의 의미를 가진 사하구의 캐릭터 이름이다.


부산 사하구 다대포 고우니 생태길의 갈대밭. 일몰 무렵 풍경이 환상적이다. 부산 사하구 다대포 고우니 생태길의 갈대밭. 일몰 무렵 풍경이 환상적이다.

고우니 생태길 갈대밭 갯벌에 사는 게들. 고우니 생태길 갈대밭 갯벌에 사는 게들.

하늘과 바다가 주황빛으로 점점 물들어가니 덱 길을 찾는 이들도 늘어난다. 커플, 가족, 친구는 물론 혼자서 걷는 사람도 많다. 갈대밭과 백사장이 워낙 넓어서일까. 번잡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사람마저 풍경에 녹아든다. 갈대밭 사이에 서서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도 눈에 띈다.

갈대가 자라고 있는 곳은 갯벌. 갯벌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네 싶었더니 갯벌 색과 똑 닮은 게들이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생생한 생명의 현장에서 아이도 어른도 눈을 떼지 못한다. 고우니 생태길로 들어서면 나무 덱을 걸으며 갈대 바다를 즐길 수 있고 해변 쪽으로 가면 갈대밭 사이를 드나들며 갈대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고 산책할 수 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라 아쉬워했지니 구름이 오히려 웅장한 배경이 된다.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공항과 가까워서 노을 지는 하늘 위로 비행기가 자주 날아간다. 도심 여행지에서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꿔본다. 넓은 갈대밭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 노을에 물든 하늘과 구름이 황홀하다. 곳곳 물웅덩이에도 갈대가 거꾸로 춤추고 주황빛 물결이 일렁인다. 도심 갈대 바다에서 낭만의 파도에 젖는 시간이다.


▷여행 팁: 울산 간월재를 오를 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출발하는 게 편하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배내2공영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주말에는 도로까지 주차장이 될 정도로 북적거린다. 간월재 휴게소 운영시간은 오전 10시~오후 4시 30분. 컵라면, 구운 계란, 햇반, 맛김치, 초코바를 판매한다.

부산 사하구 다대포 고우니 생태길은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에서 하차 후 2번 출구로 나가면 걸어서 5분 거리다. 가장 가까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려면 내비게이션에 다대포 생태탐방로를 목적지로 하면 된다. 주차요금은 10분당 200원.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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