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이태원 참사, 충분한 현장 인력·대비책 없었다"

입력 : 2022-10-30 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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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교수 "당국, 실시간으로 인파 모니터링 했어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을 방문,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을 방문,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와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주장했으나 외신들의 판단은 달랐다.

이날 이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는 기자 질문에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풀리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 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며 "어제도 많은 시민이 (도심 시위에) 모일 것으로 예상돼 경찰 경비 병력 상당수가 광화문 쪽으로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또 "지방에 있던 병력까지도 유사시에 대비해 동원 계획이 짜여 있었다"며 "이태원은 (인파가) 예전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아 평소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로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됐는데도 현장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현지시간으로 29일 보도에서 "한국은 수십 년간 정치적 시위 및 종종 폭력적 결과를 부른 경찰 병력 진압을 수반한 대규모 집회를 겪어오면서 군중 통제에 대한 경험이 있는 나라"라며 "이번 토요일 밤의 이태원 상황은 최근의 정치적 시위 현장에서 민간인보다 경찰이 많은 것처럼 보인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외국인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외국인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뉴욕의 존 제이 범죄학 컬리지 강사인 브라이언 히긴스는 NYT에 경찰과 공공안전 당국자들이 대규모 군중에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충분한 현장 인력과 계획이 없었던 것은 꽤 분명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수용 가능한 규모보다 더 많은 인파가 그 공간에 들어갔다. 그것은 분명하다"며 "많은 사람이 일단 안에 들어간 상황에서 그들을 빨리 해산시킬 계획 또한 있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군중이 운집할 것이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 출구 신호나 해산을 도울 장내 설비를 미리 준비하고 안내 방송 등 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고에 휘말렸던 생존자는 사고 당시 주변에 있던 경찰관 몇 명이 달려와 수습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작년 핼러윈 때도 큰 인파가 몰렸다. 올해는 사람이 더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가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해 군중을 통제했어야 했다"고 NYT에 말했다.

CNN 방송도 3년 만에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없는 첫 핼러윈 행사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마스크 착용 의무도, 군중 규모에 관한 제한도 없었다"고 전했다.

CNN 국가안보분석가이자 재난관리 전문가인 줄리엣 카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서울 사람들은 인파가 밀집된 공간에 익숙해 충분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참사 원인을 정확히 꼬집을 수는 없다면서도 "당국은 사고 전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대피시킬 필요성을 감지할 수 있도록 군중의 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책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12년을 거주했다는 윌렘 그레젤은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이날 저녁에는 이태원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인근에서 경찰관 몇 명만 보였다"면서 "인파가 몰리면 경찰이 거리와 골목길을 통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핀 뒤 이번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핀 뒤 이번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오후 긴급히 귀국해 사고 현장을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서울시 전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방안을 정부와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가 사고 예방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이제 막 귀국해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서울시는 이번 핼러윈을 앞두고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시 관계자는 "핼러윈에 대비해 따로 특별대책을 마련하거나 상황실을 운영하지는 않았다"며 "자치구에서 관련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을 담당하는 용산구는 27일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코로나19 방역·소독과 주요 시설물 안전 점검에 나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한 안전관리 대책은 없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날 오후 6시께 공식 입장을 내고 "12월까지 관내 행사와 단체활동을 모두 중단한 채 애도 기간을 가진다"며 "이 기간에는 모든 불요불급한 관내 행사와 단체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내 다중이용시설과 상업용건축물의 시설을 안전점검하고 겨울철에 대비한 화재예방시설도 완벽하게 점검해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치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부근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부근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구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사고 당일 밤 10시 50분께 현장에 도착해 경찰과 함께 긴급 구조와 의료 지원에 나섰고, SNS 계정은 비공개로 전환해 공식 대응을 자제했다.

구는 전날 오후 11시 구청에 긴급상황실을 설치하고 구청장 등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비상대책 회의를 열었다. 30일 0시 20분부터는 재난안전대책본부와 통합지원본부를 가동했고, 오전 4시에는 서울시 요청에 따라 인명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한 현장상황실을 설치했다. 이어 오전 3시에는 전 직원 절반, 오전 9시에는 전 직원 동원 명령을 발동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태원 관할인 서울 용산경찰서는 전날 이태원 일대에 수십만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치안 강화 차원에서 평소 주말보다 많은 200명의 경찰기동대 인력을 곳곳에 배치했다.

경찰은 참사 발생 후에는 현장 상황 관리를 위해 총 1371명의 경찰을 투입했다. 사고 현장 통제 전문인력 660명과 교통관리 경찰 261명도 투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참사라는 결과만을 두고 경찰 대처의 타당성을 따져선 안 된다"면서도 "경찰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30일 오후 6시 기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153명, 중상자가 37명, 경상자가 9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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