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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가 걷힌 자리, 산복도로의 삶과 이야기는 계속 돕니다 [산복빨래방] EP 21.

    입력 : 2022-11-03 19:26:23 수정 : 2022-11-22 09: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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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복 빨래방] EP 21. 마지막 이야기

    10월 31일부로 6개월 여정 마쳐
    빨랫감 504개 세탁하며 ‘소통’
    세탁비 대신 받은 이야기들
    63회 걸쳐 기사·영상으로 남겨
    세탁기 등 모든 시설 마을 기부
    주민협의회가 무료로 계속 운영

    안녕하세요, 산복빨래방입니다. 산복빨래방은 지난달 31일로 운영을 마쳤습니다.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는 빨래방’ ‘부산 산복도로의 진짜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을 목표로 6개월 전 〈부산일보〉 디지털미디어부 2030팀은 산복빨래방 문을 열었습니다. 두 번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우리 손을 거친 빨랫감은 500개를 넘었습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어머님, 아버님이 눈물과 웃음으로 쏟아낸 이야기는 24꼭지의 기사와 39편의 영상으로 전국의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산복도로에서의 176일을 뒤로 한 채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눈물바다 된 빨래방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노. 정이 들어도 너무 많이 들어버렸어.” “호천마을 떠나도 우리 잊으면 안 돼. 우리도 삼촌들 잘해줬던 거 하나도 잊지 않을게.”

    지난달 31일. 이른 오후부터 단골 어머님 다섯 분이 함께 빨래방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손에 빨랫감이 없습니다. 아직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는데, 서로를 바라보자 눈물부터 핑 돕니다. 늘 빨랫감이 가득했던 빨래방 한쪽도 이날만큼은 텅 비었습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오전에 어머님, 아버님이 ‘이별 선물’로 놓고 간 요구르트, 양말, 찐 고구마가 한가득 놓여 있습니다.

    “정 주지 말 걸 그랬다. 왜 왔노. 빨리 가버려라.” 어색한 분위기 속 어머니가 툭 한마디 던집니다. 하지만 꽉 잡은 손은 따뜻했습니다. 떠나는 손자, 손녀 잡듯 그저 건강해라, 행복해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어머님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우리 가슴은 먹먹해집니다.

    ■176일, 504개

    5월 9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총 176일,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빨래방에서 어머님,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대한민국 발전의 일등 공신인 주인공들은 매일 이불을 이고 빨래방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세탁한 빨랫감만 504개. “이 마을 빨래는 자네들이 다 했어!” 통장님의 호탕한 칭찬에 왠지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수십 년 전 결혼할 때 친정에서 가져온 이불, 이번 추석 때 손자가 오면 내줄 담요. 저마다 사연을 흠뻑 배고 온 빨랫감은 깨끗하게 주민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삯을 받은 우리에게 어머님, 아버님은 “자식들도 안 듣는 이야기다”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겠노.” 라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호천마을 한가운데 있는 빨래방에서 만난 주민들이 “네가 여기 웬일이고!” “너무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하며 부둥켜안는 건 예삿일이죠.

    ‘도시재생’ ‘뉴딜’ 등 생활 인프라가 열악한 산복도로를 바꾸려는 거창한 이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키가 큰 새 건물이나 마을 곳곳에 그려진 형형색색 벽화는 진짜 주민의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주민이 진정 원하는 건 관심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작더라도 주민들이 즐기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산복도로에 필요하다는 걸 산복빨래방에서 알았습니다.

    ■주민 품에 안긴 빨래방

    〈부산일보〉는 세탁기, 건조기를 포함한 산복빨래방의 모든 시설을 마을에 기부합니다. 이제 빨래방이 취재를 위한 공간이 아닌 주민 생활 시설로 탈바꿈하는 셈입니다.

    산복빨래방 운영은 마을 주민 단체인 ‘호천마을주민협의회’가 맡습니다. 산복빨래방을 처음 준비할 때부터 약속했던 일입니다. 다른 도시재생 시설처럼, 우리가 빨래방 문을 닫는 순간 시설이 사라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민협의회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이달 중순부터 다시 빨래방 문을 열 계획입니다.

    참, 세제나 섬유유연제는 어떻게 하냐고요? 산복빨래방에 나온 주민분들의 사연에 감동하여 유한양행에서 세제를 주셨습니다. 그 양만 대형이불 1000회를 세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덕분에 수년간 호천마을 어르신들은 빨래 걱정을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언론·지자체도 주목

    총 39편의 영상과 24꼭지의 기사로 전국 독자를 만났습니다. 유튜브와 네이버TV 영상, 포털과 〈부산일보〉 홈페이지의 조회 수를 합치면 50만 회가 넘습니다. 유튜브 〈산복빨래방〉 채널을 구독한 4100명의 구독자 분들은 연재 내내 우리에게 든든한 힘이 됐습니다.

    학계와 언론계에서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물론 해외대학까지 저희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언론 변화, 혁신 사례로 산복빨래방을 꼽았습니다. 부산 동구청에서는 산복빨래방을 모델로 생활 밀착형 빨래 시설을 크게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산복도로는 오늘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열악한 산동네’ 또는 ‘야경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보다는 산복도로에 가장 ‘부산’스러운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음을 기억하려합니다.‘어머님, 아버님.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김준용·이상배 기자·김보경·이재화 PD jundragon@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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