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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세기 전반 가야계, 야마토 제2왕조 ‘가와치 왕조’ 세웠다” [깨어나는 가야사]

    입력 : 2022-11-29 16:20:55 수정 : 2022-11-29 18: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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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나는 가야사] 6. 일본 3왕조 교체설

    고구려 남정에 타격 가야 유민
    열도 건너가 새로운 왕조 건립
    일본 최대 전방후원분 축조

    철기 등 기술혁신 시대 열어
    이후 백제계 제3왕조로 교체

    일본 3왕조 교체설과 관련해 가야계가 제2왕조 닌토쿠왕조를 열었다는 주장이 있다. 사진은 길이 486m로 일본 최대의 전방후원분인 닌토쿠왕릉. 사카이관광콘벤션협회 공식사이트 캡처 일본 3왕조 교체설과 관련해 가야계가 제2왕조 닌토쿠왕조를 열었다는 주장이 있다. 사진은 길이 486m로 일본 최대의 전방후원분인 닌토쿠왕릉. 사카이관광콘벤션협회 공식사이트 캡처

    가야사를 말하는데 왜 일본 3왕조 교체설인가. 400년 고구려 남정으로 금관가야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으면서 그 엘리트층과 유민의 큰 흐름이 일본 열도로 넘어갔다. 그들이 3왕조 교체설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가야사와 관련할 때 일본 3왕조 교체설은 ‘일왕의 한반도 출신설’과 연관된다는 것이며, 가야계가 일왕이 됐다는 강력한 주장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야계를 이어 나중에 백제계도 일왕이 됐다고 한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아우른 양대 축에서 ‘고구려-신라’ 2국 동맹보다 ‘백제-가야-왜’ 3국 동맹은 매우 긴밀하게 서로 작용했다. 결국 후자의 동맹은 가야계와 백제계 일왕의 등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3개 왕조 중 제2왕조는 가야계 왕조였고, 제3왕조는 백제계 왕조였다는 선명한 주장이 있다.

    일단 ‘3왕조 교체설’은 일본에서 2차 대전 이후 고대사 연구의 최대 학설로 꼽힌다. 일왕이 하나의 혈통으로 내려왔다는 ‘만세일계’를 뒤집고, 서로 다른 혈통의 3개 왕조가 교체했다는 대담한 주장이다. 처음 주장이 제기된 뒤 상당한 파문이 일어났으나 이후 많이 수긍하는 학설이 됐다.

    먼저 ‘3왕조 교체설’의 근거는 712년에 편찬된 일본 <고사기>에 나오는 야마토 정권의 1~33대 일왕 중 18명은 가상 인물이며 15명만 실재했다는 것이다. 실재한 15명의 계보를 따져보니 3개 왕조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일 야마토 정권의 역사적 실상은 제1~3차 야마토 정권으로 나뉜다는 소리다. 제1왕조 스진(崇神) 왕조(10~14대), 제2왕조 닌토쿠(仁德) 왕조(16~25대), 제3왕조 게이타이(繼體) 왕조(26~33대)가 그것이다. 현재 일왕은 제3왕조 게이타이 왕조의 후손이다.



    이중 문제적인 왕조는 제2왕조이다.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간 가야계 혹은 기마민족계가 규슈를 손에 넣은 뒤 5세기 전반에 나라, 교토, 오사카 지방을 정복해서 가와치 지방에 왕조를 열었다는 것이다. 제2왕조를 ‘가와치 왕조’라고도 한다.

    최인호는 역사소설 <제4의 제국>에서 소설적 허구에 그치지 않는 아주 강한 역사 추리를 내놓았다. 그의 추리에 따르면 100여 년간 지속한 가와치 왕조는 가야계 왕조라는 것이다. 가야계 왕조의 초석을 놓은 이는 15대 일왕 오진(應神)으로, 그는 대한해협을 건너간 ‘가야판 모세’로 칭해졌다. 오진은 7년간 동쪽 정벌에 나섰으며, 그를 잇는 16대 닌토쿠가 금관가야 궤멸 이후 30여 년 만인 433년 오사카 평원에 가와치 왕조를 열었다는 것이다. 5세기 전반에 축조된 오진왕릉과 닌토쿠왕릉은 6㎞ 정도 떨어져 오사카 평원의 같은 위도상에 있다. 닌토쿠왕릉은 길이 486m로 일본 최대의 전방후원분이다.

    최인호의 역사 추리를 더 따라가면 제2왕조는 즉위 8년 만에 암살당하는 25대 부레쿠(武烈)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507년 백제계인 제3왕조 게이타이 왕조로 교체된다. 게이타이 일왕은 고대국가 성립기의 큰 전환점을 이뤘는데, ‘게이타이(繼體)’는 ‘체계, 왕계를 이어받다’라는 뜻이다.

    3왕조 교체는 일본 고대사가 한반도 고대사, 특히 가야-백제와 놀라울 정도로 긴밀히 연계되면서 큰 격동을 치르고 있었다는 점을 역설한다. 400년 금관가야의 궤멸 이후 제2 도래인 시대, 기술혁신 시대를 맞은 5세기 일본 열도의 고대사는 급물살을 탔다. 당대 일본 열도는 야마토 왜 왕권과 각 지역 대(大)수장들의 느슨한 연합체에서 강한 연합체로 나아갔다. 일본 고대사가 3왕조 교체를 겪으면서 점차 제 몸을 추슬러 나아갔다는 것이다.

    기나이의 야마토, 규슈의 쓰쿠시, 산인(山陰)의 이즈모, 산요우(山陽)의 기비는 고대국가 형성기 일본 열도를 구성하던 중심 지역이었다. 야마토는 왜 왕권을 정점으로 하고 있었고, 각 지역은 대수장 지배 체제를 갖추었는데 야마토 왜 왕권은 동아시아 정세에 대응할 일종의 군사령관으로서 대수장들의 세력을 점점 강력하게 총괄해 나갔다.

    그러나 아직까지 각 대수장들은 열도 내에서 서로 교류하면서도, 한반도 각 지역(신라까지 포함했다)과 독자적인 교류를 통해 위상을 다졌다. 그 와중에 대수장들의 반란도 있었다. 442년 야마토 지역인 나라 분지 남서부의 가쓰라기씨가, 462년 산요우의 기비씨가 신라와 연계해 야마토 왜 왕권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압을 당했다. 527~528년 규슈 쓰쿠시 세력이 신라와 내통해 커다란 반란인 ‘이와이의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야마토 왜 왕권은 대수장들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권력을 강화했으며, 5세기 후반 가와치 왕조의 중심인 오사카 평원에는 대장간들이 확산하고 있었다. 왜는 비로소 철기를 스스로 만드는 단계에 진입했는데, 가야 유민이 유입된 제2 도래인 시대가 점차 여물어가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고,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일본 열도도 <고사기>와 <일본서기> 편찬을 통해 통일국가 ‘일본’으로 나아가는 도상에 장차 들어설 것이었다. 한반도의 가야 백제와 긴밀히 연계된 일본의 3왕조 교체설은 그 도상의 풍부한 속살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가야사와 백제사의 연장이기도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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