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온라인 불법 토토, 청소년 호주머니까지?

입력 : 2022-12-1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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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월드컵 기간 스포츠 도박 사이트 기승
갈수록 커지는 자금 규모… 대책 마련 시급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인 월드컵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업자들에게 이른바 '대목'으로 통한다. 중고생을 비롯한 청소년들까지 유혹의 타깃이 된다. 부산일보DB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인 월드컵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업자들에게 이른바 '대목'으로 통한다. 중고생을 비롯한 청소년들까지 유혹의 타깃이 된다. 부산일보DB

■ 교실 덮친 월드컵 도박

“3만 원 걸어서 50만 원까지 따 봤습니다.”

스포츠 도박이 학생들의 호주머니까지 덮치는 시대다. 비대면 사회와 온라인 기술이 겹치고 카타르 월드컵이 불을 지폈다. 지금 온라인 곳곳에 ‘베팅하라’는 유도 광고가 넘쳐난다. 월드컵 경기 결과를 예측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이다. 현재 불법 도박 사이트는 휴대전화와 입출금 계좌만 있으면 손쉽게 이용 가능하다. 성인 인증도 필요 없다.

“평소에도 한 반에 4, 5명 정도는 불법 토토를 했는데, 월드컵 기간에 최소 두 배는 늘어난 것 같아요.” 수능이 끝난 교실은 어느새 베팅 방법을 주고받는 정보 교환의 장이 됐다. 어떻게 베팅해서 얼마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신기루 같은 경험담이 떠다닌다. 신규 회원을 유도하면 보너스를 주는 이벤트까지 나와 불법 도박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그 옛날, 동전이나 구슬로 놀던 ‘짤짤이’는 애교 수준인 것이다.


■ 불법의 강렬한 유혹

우리나라에서 합법적 스포츠 베팅은 스포츠토토뿐이다. 다른 건 불법이고 이용하면 처벌받는다. 스포츠토토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한다. 승패와 득점 점수를 맞히면 투자한 금액에 지정된 배율을 곱해 돌려주는데 베팅 금액은 최대 10만 원으로 제한된다. 청소년은 이마저 이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청소년 도박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법 도박 사이트는 기승이다. 스포츠토토와 달리 베팅 시간이나 상한액이 정해져 있지 않고 배당률이 높아서다. 단순히 승패나 득점 외에도 경기 첫 득점자, 첫 경고 선수 맞추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베팅을 유도한다. 재미 삼아 무심코 시작했다가는 도박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사행성과 중독성이 강하단 얘기다. 이들 불법 도박 사이트는 ‘국가 허용 스포츠 베팅’이라 광고하지만 모두 허위다.


우리나라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으로 약 50조 원에 달한다. 합법적 사행산업의 2021년 전체 매출액인 14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부산일보DB 우리나라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으로 약 50조 원에 달한다. 합법적 사행산업의 2021년 전체 매출액인 14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부산일보DB

■ 무섭게 몰리는 자금

불법 스포츠 도박은 나이, 성별, 직업을 안 가린다. 이미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통계 수치가 말해 준다. 얼마 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2018년 8월부터 2019년 9월까지 1년간 불법 도박에 몰린 돈은 81조 5474억 원. 이 중 스포츠 도박이 50조 5106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합법적 사행산업 전체의 지난해 매출(14조 3758억 원)과 견줘 볼 때 엄청난 규모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불법 스포츠 도박에 따른 세금·기금 포탈액도 2016~2022년 5년간 약 3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비해 단속과 검거는 걸음마 수준이다. 현실적으로 사이트 대부분이 해외에 인터넷 주소(IP)를 두고 있으니 단속 자체가 어렵다. 방송통신위원회 감시 기능도 차단 요청부터 의결하고 조치하는 데까지 몇 주가 걸려 실효성이 떨어진다. 도박 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긴 뒤로 단속이 기술을 못 따라가는 게 근본적인 원인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 검거율은 2018년 61.5%에서 2022년 8월 기준 28%로 절반 이상 떨어졌다.


■ 한탕주의에 빠진 사람들

불법 도박판을 벌이는 업체든 베팅에 사활을 건 사람이든 노리는 건 똑같다. ‘한탕’이다. 베트남 등 해외에서 10년이나 도피 생활을 하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지난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들의 불법 자금 규모는 무려 1조 2000억 원이었다. 지난 1일에는 4년간 1886억 원가량을 챙긴 일당 9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반대편에 인생을 도박에 탕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이 감당 못하자 회삿돈을 횡령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돈을 잃으니 오기가 생깁디다. 하루종일 다음 경기 베팅 생각밖에 안 합니다.” 대부분 소소한 금액으로 시작했다가 서서히 중독의 수렁에 빠져들고 끝내 헤어나지 못하겠더라는 호소다. 2018년 19세 이상 국민 4300여만 명 중 150여만 명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경험했다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 보고서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는 도박에 일상을 저당 잡힌 사람들의 욕망으로 어지럽다.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한탕'을 노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온라인상에서 기승을 부린다. 승패나 득점뿐 아니라 경기 첫 득점자, 첫 경고 선수 맞추기 등 다양한 베팅을 유도해 사행성을 조장한다. 사진은 2014년 적발된 한 도박 사이트. 부산일보DB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한탕'을 노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온라인상에서 기승을 부린다. 승패나 득점뿐 아니라 경기 첫 득점자, 첫 경고 선수 맞추기 등 다양한 베팅을 유도해 사행성을 조장한다. 사진은 2014년 적발된 한 도박 사이트. 부산일보DB

■ 대책은 없는 것인가

국내 사행산업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건 역시 코로나19였다. 그 여파로 합법적 사행산업은 고사 위기, 반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은 거침없는 확산 추세다. 이 불균형의 폐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우선 “양성화”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스포츠 승부 예측 게임을 합법적 공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토토의 경우, 주요 소비층은 나이가 들었고 MZ세대들의 유입은 아직은 미진하다. 종목과 상품 등의 규제를 일정 부분 풀어서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북미와 유럽은 이미 합법화 정책으로 산업 발전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엄격한 총량제라든지 제한된 배당률 때문에 불법 쪽으로 스포츠팬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현실에 맞게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단 얘기다.

물론 반론도 있다. 월드컵 열기는 다른 도박 시장의 분산된 돈마저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도박 자금이 스포츠토토 한곳으로 몰리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베팅 금액이 커지면 도박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들썩거릴 것이다. 이 또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 건전한 게임으로 즐기려면

정책적, 제도적 차원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도박 중독에 빠진 뇌는 중독 대상에만 반응해 일상의 즐거움을 앗아간다. 결국 그 끝은 삶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뇌의 변화는 어릴수록 복구하기가 어려운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 스포츠토토의 ‘불법 스포츠 도박 근절 캠페인’도 그 중독성과 위험성을 환기시키기 위한 일환이다. 월드컵 기간인 지난달 21일부터 시작해 이달 19일까지 이어진다. 불법 사이트 제보에 최대 2억 원의 포상금이 주어지는 이벤트도 있다. 불법 도박은 우리 사회가 다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다.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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