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창작 기법 분석까지… 한국 창작춤 40년 갈무리

입력 : 2023-03-16 16:46:07 수정 : 2023-03-16 16: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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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한국춤의 긴 여정' 출간
공연 사진·신문 기사·대담 등 망라
500여 쪽 달하는 귀한 무용 자료
"후배들 춤 작업에 도움 되었으면"

책 <최은희, 한국춤의 긴 여정> 표지. 최은희 무용가 제공 책 <최은희, 한국춤의 긴 여정> 표지. 최은희 무용가 제공

“평생 한 번은 정리하고 싶었어요. 만 36년간 몸담았던 경성대를 지지난해 퇴임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했으니 2년 남짓 걸렸습니다. 사진 고르고, 연보 만드는 작업이 만만찮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춤 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케이스(방법론)는 될 것 같으니 후배들 춤 작업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부산의 한국 창작춤 텃밭을 일군 대표적인 무용가 최은희(전 경성대 교수). 그가 40여 년 한국춤 여정과 작품 세계를 갈무리한 책 <최은희, 한국춤의 긴 여정>(산지니)을 출간했다. 그동안 무대에 올렸던 공연 사진과 인터뷰, 기고문, 신문 기사, 공연 포스터, 팸플릿 등을 망라했다. 특히 채희완 평론가와 안무자 최은희의 대담으로 엮은 대표 작품(12개) 창작 기법 분석과 해석이 눈에 띈다.

가로 260×세로 290mm 판형으로, 무려 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모은 이번 양장본 책은 단순 회고록 이상의 귀한 무용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용 분야에 있어서, 한 개인이, 이토록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고, 세세하게 분류하고, 책으로 엮은 건 정말이지 보기 드문 일이어서다.

“비매품으로 하면 세상에 안 알려질 것 같아서 직접 출판사에 의뢰했습니다. 일종의 유통 과정인 거죠. 이 책은 기록용이어서 대중적인 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료원이나 도서관 같은 데서 소장하면 좋겠습니다.”

최은희 무용가. 본인 제공 최은희 무용가. 본인 제공

1955년 인천 출생의 최 무용가는 이화여대와 동 교육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국립국악원 연주단(무용·1978)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0~1982)에서 궁중무용과 무속무용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실기를 겸했다. 이 기간 최은희는 고 김천흥, 고 한영숙, 고 이매방, 고 김병섭(농악), 김매자 무용가를 사사했다.

실제 최 무용가는 삶의 불확실성을 춤을 통해 밝히기 위해 우리 고유의 몸짓인 굿판, 탈판, 마당놀이판과 전통춤을 전수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삶에 대한 철저한 해석을 바탕으로, 순간의 느낌에 충실한 인간의 순수한 감성을 춤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숱한 노력이 최은희 작품으로 녹아났다고 보면 된다.

최 무용가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학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연유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춤 교육자이자 안무가였다. 국내외에서 공연한 작품만 250여 회다. 이 중 안무 창작과 출연을 병행하며 각종 무용제와 예술제 공연에서 65편의 창작춤을 형상화했다.

그에게 손꼽을 만한, 혹은 자신이 가장 ‘애정’하는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최 무용가는 “아무래도 첫정이죠!”라며 최초의 한국 창작무용 민간 단체인 ‘창무회’ 단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만든 ‘도르래’ ‘매듭풀이’ 같은 몇몇 작품을 꼽았다. 그때야말로 춤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고, 우리 춤이란 무엇일까를 찾기 위해 무수한 현장을 발로 뛰던 시기였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면서도 한국 창작춤으로 뭔가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국화라고 해서 한 폭의 수묵화만 그리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무용을 해도 현대인에 대한 고뇌를 충분히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같은 무용인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도 평론가들이 치켜세워준 게 많은 힘이 됐어요.”

최은희 작품 '매듭풀이' 한 장면. 최은희 제공 최은희 작품 '매듭풀이' 한 장면. 최은희 제공

최 무용가는 1978년 창무회 창단 공연에서 독무 ‘이 한 송이 피어나네’를 선보이면서 춤 작가로 데뷔했고, 제2회(1981) 공연에서 임학선 이노연 등 6명과 공동 안무한 ‘도르래’를 공연한 뒤 1982년 첫 개인 발표회인 ‘하지제’(‘제’는 뭉쳐진 매듭으로 표현되는 전세의 업고를 무당들이 제를 지내면서 춤으로 풀어내는 무속의식을 의미한다. 이 의식을 춤으로 형상화했다)를 발표했다. 같은 해 제4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넋들임’을 안무 및 출연하면서 대상을 받았다.

부산과 인연은 부산시립무용단(1983~1984) 안무자로 시작됐고, 1984년 9월 경성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85년에는 부산에서 순수한국무용 민간 동인단체 ‘춤패 배김새’를 창단해 지역에 있는 우리 춤 언어를 찾고 새로운 창작 기법을 모색하는 등 창작무용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울산시립무용단 초대 안무자(2000~2003)를 역임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요트 경기 개회식 행사 ‘파도를 넘어서’ 안무,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선수촌 개·폐회식 안무 등을 맡아 지역 무용의 위상을 높였다.

최은희 출연 '호적 살풀이' 한 장면. 최은희 제공 최은희 출연 '호적 살풀이' 한 장면. 최은희 제공

최 무용가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항상 긴장의 연속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긴장의 순간을 여백으로 두고 싶어서 마음 수행을 하고 싶어요. 이젠 저만의 춤도 자유롭게 추고 싶습니다. 기금을 주는 매체 등에 매달리다 보면 자기 춤의 특성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움직임이 없는 움직임도 만들고 싶고요. 잔가지를 쳐야겠죠.”

한편 최 무용가는 지난 13일 부산 출판기념회에 이어 오는 21일 서울 대학로 쿼드극장 1층 라운지에서도 출판 기념회 및 아카이브 영상 상영회를 갖는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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