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바른말 광'이 길어올린 영혼의 언어

입력 : 2023-03-16 18: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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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2001년 열린 ‘제1회 혼불 문학제’. 부산일보DB 2001년 열린 ‘제1회 혼불 문학제’. 부산일보DB

“가앙 가아아앙.” 작가 최명희가 길어올린 범종(梵鍾) 소리다. 기막힌 의성어다. 산의 여윈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고찰(古刹)의 종소리가 고스란히 귀에 닿는 듯하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는 박모(薄暮)의 시간, 연인을 그리는 강실의 애틋한 마음에 종소리는 잿빛으로 울린다. 그 소리가 사바의 예토(穢土)에 깃들며 빚어내는 풍경은 글이 아니라 차라리 한 폭의 수묵화에 가깝다. 〈혼불〉은 언어를 정교하게 골라 치밀하게 새겨넣은 우리말의 곳간이다. 울멍줄멍, 덩클덩클, 우세두세, 조붓하다, 뇌꼴스럽다, 꽃심, 깜밥. 말은 살아서 제 빛깔을 선연하게 발한다.

최명희는 지역말이나 낯선 낱말을 애써 들춰내어 한땀 한땀 수를 놓듯이 글을 지었다. 그저 표현의 다양성이나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도모하려는 글쓰기가 아니었다. 시종일관 이토록 준열하게 문장을 직조한 까닭은 언어를 정신의 지문(指紋)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었다. 〈혼불〉은 그 자체로 우리 문화와 풍속, 숨결이자 삶의 결이며, 눈부신 언어로 출렁이는 영혼의 집이라 해도 좋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글쓰기는 작가에게 피가 마르는 고통이었다. 생각의 무늬가 원고지에 오롯이 스며드는 경이로운 광경이 어찌 저절로 펼쳐질 수 있었으랴. 소설 쓰기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에 정신의 지문을 새겨넣는 일과 같았다. 날렵한 끌을 가지지 못했으니,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지난한 여정이었다. 온 마음으로 온 생애를 새겨넣은 글쓰기는 마침내 인물의 마음자리와 삶의 풍경, 사물 하나까지 온통 살아 숨 쉬도록 만들지 않았던가.

봄뜻이 그윽한 오후의 한때, 〈부산일보〉 ‘바른말 광’의 연재를 마친다는 글쓴이의 짤막한 인사를 접했다. 매주 목요일 신문 뒤쪽부터 들춰보던 즐거움과 결별해야 하니 아쉽다.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거나 한자의 오용과 남용, 어설픈 번역체를 꼬집는가 하면, 한결 자연스럽게 글을 짓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때로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쓰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지점을 파고들고, 재미진 신조어를 두루 소개하기도 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맛깔난 표현과 낱말들을 숱하게 길어올린 미덕을 기억한다. “마른걸레를 짜듯이” 쭉정이를 골라내고 옹골찬 말의 씨를 심고 다듬은 나날들이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혼불, 그러니까 영혼이 들앉은 세계다. 1000회로 매듭지은 ‘바른말 광’은 존재와 세계를 한층 북돋는 노둣돌이 아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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