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버지의 무게

입력 : 2023-03-19 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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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를 장식한 독재자들의 끝은 대개 비극이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대물림됐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아버지의 망령을 떨치고자 했다. 소망은 사치였다. 망명도 자유를 주지 못했다. 그녀는 오로지 소련을 비난하는 서방세계의 도구였을 뿐이다. 오빠 야코프는 더 비극적이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죽음으로 간신히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카스트로와 무솔리니, 후세인, 프랑코, 피노체트, 차우셰스쿠 같은 독재자의 자식들도 파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라는 정치적 영혼을 벗는 것도, 대신 죗값을 치르지도 못했다. 대부분 침묵과 도피와 은둔에 몸을 맡겼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그늘을 걷는 대신 적극 옹호하는 방식을 택했다. 거대한 유산을 이어받은 이들은 2016년 이후 정치권력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여기에는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아시아와 남미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정치 후진국이었다. 독재자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판에서 스타로 군림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부정하든 이용하든, 어쨌든 이 모두가 과거의 업보와 연결돼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굳이 독재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왕관의 무게’가 힘겨운 자식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는 둘째 아들 헌터 바이든이 ‘아픈 손가락’이다. 그는 바이든 부통령 시절 권력 남용 의혹에 이어 지금도 술과 마약 중독, 문란한 여성 관계 등으로 연일 매스컴을 탄다. 셰익스피어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헨리 4세〉)고 썼던 대로 왕관의 무게를 버티는 일이란 실로 험난하다. 우리나라 정치인과 자식들이라고 비껴갈 길은 없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최근 충격적 기행을 보여 주었다. 전 씨 일가의 불법 행위를 폭로한 것도 모자라 SNS 라이브 방송에서 마약을 복용하고 환각 상태에서 이상 행동을 노출했다. 속죄의 방식인지 자포자기인지 그 심정을 알 길은 없다. 한바탕 소동으로 끝날지 은닉 재산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지 그것도 모른다. 다만, 과거의 무게에 짓눌렸음은 쉬이 짐작된다. 역사의 기록은 이렇다. ‘비극이 상연되는 무대에 있는 한 자식들은 불행했고,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그들은 정신의 자살 혹은 육신의 죽음을 맞았다.’ 역사는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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