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제] 카바코스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

입력 : 2023-04-01 18: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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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주 음악가로 네 차례 무대… "한국 젊은 연주자들 내게도 영감 줘"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연주 장면.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연주 장면.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젊은 시절 거장들과 연주해 본 경험이 있고, 그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다른 한편으론 정상에 오른 지금 젊은 사람들과 연주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라 생각해 주저하지 않고 응하게 됐다. 더욱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31일 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이 끝난 후 대기실을 찾아간 기자에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6)가 들려준 말이다. 막 연주를 끝낸 터라 몹시 피곤했을 텐데도 그는 학구적이면서도 진솔한 답변을 이어 나갔다.

카바코스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김선욱 피아니스트와 함께 상주 음악가를 맡았다. 그는 개·폐막 공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지휘 데이비드 로버트슨) 협연 외에도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친구들’(3일 오후 9시 30분),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김선욱’(7일 오후 7시)의 무대 등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스 출신인 카바코스는 1985년 18세 때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 나움버그 콩쿠르를 휩쓸었다. 현재 세계에서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그는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과 표현력, 연주적 기량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대기실에서 선 채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오늘 개막 공연 연주(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만족스러웠나.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관객이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하다.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관객 반응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통영국제음악제 2023 상주 음악가는 어떻게 성사됐나.

▲진은숙 예술감독이 초청했다. 그와 알고 지낸 지는 꽤 됐다. (이하 통영국제음악제 관계자의 부연 설명)이 정도로 유명한 분은 초청하고 싶다고 쉽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아주 오랜 기간 조율한 결과, 올해 마침내 이뤄졌다. 통영에 온 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통영국제음악제(TIMF) 상주 연주 단체인 TIMF 앙상블 협연 및 지휘를 한 적 있다. 통영국제음악당 음향이 정말 좋다.


-‘카바코스와 친구들’ 공연에 함께하는 양인모(바이올린)·한재민(첼로)·박하양(비올라) 같은 젊은 연주자는 직접 선택한 건가.

▲아티스트 섭외는 진은숙 예술감독과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진행했다. 한국 연주자들과 연주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전부터 한국 연주자들이 우수한 건 잘 알고 있었다. 저 역시 젊은 시절 거장들과 (‘카바코스와 친구들’처럼) 연주해 본 경험이 있고, 그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서 많은 도움이 됐다. 다른 한편으론 정상에 오른 지금 젊은 사람들과 연주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라 생각해 기꺼이 응하게 됐다.


-9일 폐막 공연에서 연주할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정적의 파편’은 이번이 아시아 초연이다. 진 작곡가에 따르면 이 곡은 카바코스가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콘체르토 작품이다. 진 작곡가는 이 곡이야말로 카바코스가 아니면 연주하기 힘들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곡은 의심할 여지 없이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세계 초연을 했고, 이번에 연주하면 10번째가 된다. 물론 곡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테크닉적으로 끔찍하게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 작곡가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곡을 썼는지 알아야 한다. 진 작곡가는 음의 ‘색깔(음색 혹은 음향)’을 구현해 내는 마술사 같다. 여느 현대음악처럼 큰 음향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이 이 곡의 묘미이다. 오케스트라 파트 색채도 풍부하고 깊이가 있다. 이런 훌륭한 곡을 나를 위해 써 준 건 정말이지 영광이다.


-약간 추상적인 질문이긴 한데, 오랜 기간 꾸준한 기량을 유지해 온 음악가로서 원동력이 있을까.

▲자기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건 아주 복합적인 의미이다. 단순히 “음악이 영감을 준다”고 쉽게 말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연주할수록 깨닫는 건 음악이 인생과 같다는 것이다. 즉 삶은 음악이고, 음악은 또한 인생이다. 음악 안에는 수많은 음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고, 하나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 바뀌어야 한다. 정말 연약하고 깨지기 쉽지만 동시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놀라운 창조물의 일부인지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빌딩을 구축하는 것이고, 제대로 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의미를 살리는 게 동기부여가 된다. 우리는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을 청중에게 전달한다. 결국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란 믿음이 제 연주의 원동력이자 영감일지 모르겠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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