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일 원전 오염수 방류, '자국 설득'은 됐나

입력 : 2023-05-30 18: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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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대마도, 핵폐기물 처분장 유치 바람
일본 정부, 방사능 우려 아랑곳 안 해
이웃 걱정 배려가 인간의 최소한 도리

한국 정치권, 국민 안전 문제 외면
‘괴담·친일’ 프레임 씌우기 분열 조장
최악의 사태 대비하는 것 국가 책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설치된 오염수 저장 탱크 장면.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설치된 오염수 저장 탱크 장면. 연합뉴스

대마도는 한 해 한국인 관광객 41만 명이 찾던 일본 섬이다. 1980년 8월 11일 ‘아시아 물개’ 조오련이 부산 다대포 방파제에서 대한해협을 수영으로 건너 13시간 16분 10초 만에 대마도에 상륙했을 정도로 가깝다. 일본 본토 후쿠오카에서 147km, 부산에서 48km 거리다. 울창한 삼나무 숲을 통해 대마도 영봉 시라타케 정상에 오르면 바다 너머 거제도와 부산이 가물가물 보인다. 그런 대마도에 ‘핵폐기물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유력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4일 규슈판에 “나가사키현의 낙도 대마도 상공회의소 등이 원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 조사 논의를 시의회에 요구하는 청원서 제출을 검토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어 13일에는 “대마도 건설업협회·협동조합은 최종 처분장 선정 1단계인 문헌조사 청원서를 시의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제 겨우 공론화 단계이고, ‘돈 몇 푼에 아름다운 섬을 파느냐’는 시민사회의 반대도 있지만, “지역 진흥 기회”라는 대마도 상공회의소 회장의 인터뷰처럼 문헌 조사에만 들어가도 최고 90억 엔(한화 847억 원)의 교부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섬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일본 열도 건너 후쿠시마 바다에는 원전 ‘오염 처리수’ 해상 방류용 해저 터널 마무리 굴착 공사가 한창이다. 방류할 지점을 표시한 4개의 부표가 제거되면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간다. 원전 오염수 130만톤을 원전에서 1km 떨어진 바다에 약 30~40년에 걸쳐 방류하는 것이다. 일본 어업단체와 언론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본 규슈 전역을 커버하는 니시니혼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출 서두르지 말고 이해 넓혀라’는 사설까지 게재할 정도다. 신문은 “정부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해양 방출을 인가한 원자력규제위원회에 100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된 것은 안전성에 우려가 많은 듯하고, 소비자가 후쿠시마 생선 소비를 꺼리는 것을 걱정한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등 어업인들이 해양 방출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면서 “해양 방출을 무리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전 폐로 작업이 공정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산케이신문은 29일 “원전 1호기 내부를 수중 로봇으로 촬영한 결과, 원자로를 지지하는 토대의 콘크리트가 소실되면서 철근이 노출돼 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흩어질 가능성도 있고, 최악에는 핵연료 잔해에 구조물이 떨어져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는 ‘재임계’(再臨界)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원전 바닥에는 폭발 당시 녹아내린 핵연료가 구조물과 엉겨붙은 핵 찌꺼기가 880톤이나 쌓여 있다. 앞으로 원전 핵 찌꺼기를 꺼내는 공법 개발까지, 결코 무 자르듯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을 둘러싼 엄중한 현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일념으로,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는 2015년 약속과 일본 어업인의 저항, 언론의 문제 제기, 주변국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과학적으로 무조건 안전하다’는 논리로 자국 어업인조차 설득하지 못하면서 주변국 어업인에게 어떻게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아파트에서 인테리어 공사만 해도 이웃들에게 양해와 동의를 구하는 세태와는 완전히 거꾸로다. 대마도에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유치 논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등은 일본이 결정할 일이지만, 지척의 이웃인 부산과 경남 거제도 주민들의 걱정,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어민들의 우려도 진지하게 염려해야 한다. 국제법을 떠나, 그게 이웃의 마음이고, 인간의 도리다. 필요하다면, 일본 어업인에게 논의하는 보상을 한국 등 주변국 어민에게도 하겠다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이 와중에 한국 정치권과 서울 엘리트들은 이런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서로의 지지층을 의식해 분열과 반목만 조장하고 있다. 서울은 바다가 멀어서일까. 갯사람들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가 보다. ‘방사능 테러’ ‘과학과 괴담의 싸움’ 등 프레임을 서로에게 씌워 내년 총선과 지지도 상승에 이용하는 데만 혈안이다. 일본 보수 우파들이 ‘과거 식민지 백성’들의 난장을 보면서 환호하고 있을 것이 뻔한 데도 말이다. 참고로, 일본 정부는 2018년 부산 고리원전에서 70km 떨어진 대마도 최북단 항공자위대 우니시마 기지에 방사능 측정기를 설치했다.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 일본에 방사성 물질이 날아올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재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반대였다면, 일본은 어떻게 움직일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가 간의 관계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대비하는 것이다. 친일과 반일로 나눠 청백전처럼 싸우는 2023년의 대한민국, 1910년 국권 피탈의 질곡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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