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아이를 낳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입력 : 2023-09-3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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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제, 출산율 제고 역할 기대 못 미쳐
휴직 급여 현실화 등 실효성 높일 방안 절실 


■아이 많이 낳으라는 육아휴직

우리나라에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된 게 1987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건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뒤였다. 육아휴직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가진 노동자가 쓸 수 있는데, 그 기간은 자녀 1명당 12개월이다.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같은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며,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나 그와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하고, 육아휴직 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시켜야 한다. 만일 사업주가 이를 어길 경우 관련 법에 따라 꽤 과중한 형사 처벌을 받는다. 육아휴직 기간 급여도 설정해 놓았다. 육아휴직은 아이 많이 낳으라고, 즉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국가가 강제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시행 30년도 훨씬 지난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아직도 왈가왈부 말이 많다. 왜 그럴까.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 아동·유아 코너에서 아기를 안은 여성이 아기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일보DB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 아동·유아 코너에서 아기를 안은 여성이 아기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일보DB

■시행 30여 년에도 별무소용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에서 육아휴직을 강권한다. 하지만 그 의도는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고 있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미래를 몹시도 걱정하는 인구학자다. 그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인구소멸 국가 1호’, 즉 지구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때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13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를 뜻한다.

불행히도, 콜먼 교수의 ‘예언’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올해 5월 서울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콜먼 교수는 아예 ‘한국 소멸 시기’를 2750년으로 못 박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2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이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0.6명 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 15년 동안 약 30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요컨대 지난 30여 년 간의 육아휴직 제도가 출산율 제고에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비현실적 휴직 급여가 가장 큰 벽

국가가 쓰라고 권장하고 이를 막는 사업주엔 법적인 제재를 가한다고 엄포를 놓았음에도 육아휴직을 포기하거나 어쩔 수 없이 퇴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육아휴직 사용자 비율은 출생아 100명당 여성 21.4명, 남성 1.3명 수준이다. 많은 부모들이 육아휴직 사용을 주저하는 것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면 우선 회사와 동료의 눈치를 봐야 한다. 맡은 일을 동료에게 떠 넘길 수밖에 없고, 복귀 후 임금 인상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도 크다. 회사가 노골적으로 휴직을 말리거나 사직을 권고하는 사례도 많다.

거기에 더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바로 소득 문제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육아휴직을 선택하면 그에 따른 일정한 급여(수당)를 받을 수 있다. 법적으로는 ‘통상임금의 80%를 지원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상한액이다. 최대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월 150만 원이다. 이 때문에 말만 통상임금의 80%이지 현실에선 40% 받기도 어렵다. 구체적인 수치가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은 44.6%다. 소득이 반토막 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슬로베니아나 칠레는 100%이고, 체코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70~90% 정도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도 59.9%다.

더구나 육아휴직 급여의 25%는 복직 후 6개월 이상 근속 시 지급된다. 최대치인 월 150만 원을 받는다 해도 휴직 기간엔 75%인 112만 5000원만 받게 되는 것이다. 한 가족이 아이까지 기르며 월 110여 만 원으로 산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견디다 못해 부업 따위를 찾을 수도 있겠는데, 주 15시간 이상 일 하거나 월 150만 원 이상 소득이 발생할 경우 육아휴직 수당 자체를 받지 못한다.


■예산 퍼붓기 전에 묘책 강구부터

정부는 기존 12개월인 육아휴직 기간을 내년 하반기부터 6개월 연장해 최장 18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최근 세웠다. 그러면서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약 3500억 원 늘린 2조 1500억 원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실효성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아휴직을 쓰는 것부터가 어려운데 기간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세부 조건도 문제다. 육아휴직 연장 대상이 맞벌이 부부인 데다, 남편·아내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했을 경우에만 어느 한쪽의 연장이 가능하다. “부부 모두 휴직하면 뭘 먹고사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허울뿐인 육아휴직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에 맞는 급여가 주어져야 한다.

법적 안전장치를 공고히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여러 통계를 보면 어렵사리 육아휴직을 사용하고도 복귀 전후 회사의 직간접적인 차별과 압박을 견디지 못해 열에 아홉 꼴로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리한 처우’ 시 사업주를 형사처벌 한다는 남녀고용평등법 조항이 육아휴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불리한 처우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그런 처우를 받았을 경우 해당 휴직자를 구제하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이 출생률 높이는 데 만능의 해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그 실효성을 높이는 데 당장의 묘책이 절실하다. 이런저런 조건 내걸며 미룰 때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 나라가 없어질 지경이라지 않는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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