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 탄소배출권

입력 : 2023-09-26 18: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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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라니! 기후위기로 온 인류가 신음하는 요즘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싶겠지만, 진짜로 우리에게는 돈을 내고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바로 탄소배출권 이야기다. 어느 강연에서 기후위기 해법과 관련해 탄소배출권을 설명하게 되었다.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빗대어 탄소배출권을 설명했는데,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 종량제는 결국은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권리를 값을 지불하고 갖게 하는 제도다. 각 가정이나 사업장은 미리 구입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야 하고, 그 봉투가 다 차면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 더 버리고 싶다면 추가로 봉투를 구입해야 된다. 탄소배출권이 작동하는 원리도 이와 동일하다.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뿜어 내면 지구가 뜨거워지고 결국 심각한 기후위기를 초래하기에 이를 제한하기 위해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에 비용을 부과하자는 개념이 탄소배출권인 것이다.

EU, 2026년 탄소국경조정제 시행

부산·경남 기업 피해 특히 클 전망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는 해법 절실

청정 전기 생산에 국가 역량 쏟아야

이 제도는 2015년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제한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지금은 잘 정착된 쓰레기 종량제와의 큰 차이는, 그 대상이 아직은 대기업들이고, 또 기업 보호 차원에서 정부가 상당량의 탄소배출권을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이 제공받은 한도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면 그만큼 탄소배출권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도입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시장은 잘 정착되고 있을까. 우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탄소배출권이 너무 많다. 기업들이 남아도는 탄소배출권을 시장에 팔아 수천 억 원의 수익을 내는 지경이다. 실로 황당한 일이다.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10원에 사서 100원에 판 격이니 말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싼 것도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은 온실가스 1톤당 약 1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유럽의 탄소배출권은 약 15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격의 15배에 육박한다. 유럽 기업들은 탄소 배출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탄소배출권이 워낙 싸니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탄소배출권 구입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니나 다를까 EU(유럽연합)는 올해 4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할 것임을 선언했다. 유럽 외 기업들이 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경우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심각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제조업과 중화학 공업이 산업의 중심인 부산·경남 기업들이 특히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정부도 무상 할당량을 최대한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탄소배출권 제도를 손질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탄소배출권 가격은 조금씩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류가 탄소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탄소배출권 제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필자는 의문을 갖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가 쓰레기 문제를 일부 완화시키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인류가 쏟아 내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듯이 말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을 높이는 간접적인 방법 말고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본질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전기를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생산해 낼 수만 있다면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를 돈으로 사고팔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일은 태양광, 풍력, 원자력 가릴 것 없이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제조업 기반의 우리 기업들에게 매우 불리한 법안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쓰려고 해도 쓸 수 있는 청정 전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빨리 국가의 모든 역량을 에너지 전환에 쏟아부어 우리 기업들이 깨끗한 전기를 사용해서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탄소배출권 같은 지엽적인 사안에 얽매일 때가 아니다.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정책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에너지 전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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