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K-9비행장과 추모

입력 : 2023-09-26 18: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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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재송동~우동 일대 센텀시티 땅의 역사는 기구하다. 전시컨벤션센터인 벡스코와 부산영화의전당, 신세계백화점 등과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수영강 주변은 조선시대에는 경남좌수군절도사영의 수군 군함이 정박했던 곳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기업인들이 9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했다. 1940년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골프장은 대륙 침략을 위한 일본육군48항공지구사령부 예하 병참기지 비행장으로 바뀐다. 일본 육군은 학생과 노약자까지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강제 동원해 소나무를 벌채하고, 활주로를 닦았다. 비행장 인근에는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대원들이 주둔하면서 주민들에게 패악질이 대단했다고 한다.

비행장은 1950년 6·25전쟁 직후 국군 방어선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낙동강 교두보가 구축됐을 때 미 제5공군18전투폭격비행단 소속 B-26 인베이더(Invader) 경폭격기의 발진기지로 사용돼 북한군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 유엔 공군들이 F-51 무스탕, F-86 세이버 전투기 등 100여 대가 지상공격임무도 담당했다. 또한, 탄약 등 전쟁 보급품이 군 수송기로 수영비행장에 도착한 뒤 열차편으로 전방의 탄약 보급소로 운송되는 병참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군은 수영 비행장에 대해 ‘K-9 동부산 공군기지’(East Busan Base RKPP) 코드명을 부여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군사 공항, 비행장에 K로 시작하는 코드명을 붙였다. 대구국제공항을 K-2, 성남비행장을 K-16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종전 70년이 지난 지금 K-9 비행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53년 1월 K-9 비행장에서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 직후 해상으로 추락한 미 제5공군 소속 B-26 폭격기 1대와 조종사 3명의 유해를 찾는 작전이 한미 공동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미군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수중조사팀은 해운대 앞바다 수심 5~25m를 샅샅이 훑고 있다고 한다. ‘한 명의 병사도 버려두지 않는다’라면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군인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느끼게 한다.

70년 전 고향을 떠나, 해운대 차가운 바다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명복을 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꼭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남쪽 끝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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