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 먼저, 성평등한 미래로!

입력 : 2023-11-20 18: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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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여성 관리직 비율 선진국 중 꼴찌 수준
성별 임금격차 평가 26년 연속 최하위
내년 여성 노동환경 개선 예산도 삭감

가사 노동 여성 커리어에 상대적 타격
남녀 균형 갖춘 기업 경영 성과 높아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성평등이 필수

얼마 전 부산에서는 ‘어메이징 부산’이라는 테마로 ‘2023 스케일 업 부산 컨퍼런스’ 행사가 열렸다. 부산이 미래 혁신 도시로 가는 길을 묻고 실천 전략을 도출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오피니언 리더 200명이 함께한 자리였다. 2030월드엑스포 유치가 부산이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푼 멋진 행사의 사진은 신문 지면의 1면을 크게 장식했다. 조금 아쉬움이 드는 것은, 오피니언 리더로 무대에 오른 이들이 전원 남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월드엑스포 유치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무대에 왜 여성 리더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오늘의 현실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과 사회 진출은 이미 오래전에 실현되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을 추월했고,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과 교육, 사법기관 등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도 여성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21년 한국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관련 통계가 있는 OECD 37개국 중 34위, 여성 관리직 비율은 OECD 36개국 중 35위를 기록했다.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은 10%이며, 사내 이사로 따지면 2.3%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1996년 OECD 가입 이래 2021년까지 26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가 바로 성평등이라고 알려져 있다. 2022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보고서에서는 지금의 변화 속도라면 성평등에 걸림돌이 되는 법적인 제한과 차별을 없애는 데 286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에서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고 남성과 같은 위치에서 대표성을 가지려면 140년, 국회는 40년이 필요할 것으로 본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회에서 여성 의원의 비율은 2020년 당시 19%로, 2016년에 비해 겨우 2%, 2012년에 비해 4% 증가한 수치였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대한민국 국회에서 남녀 동수를 달성하게 되는 때는 2081년으로 58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을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 경제학과 여성 최초의 종신 교수인 골딘은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200년이 넘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미국 사회에서 소득과 고용률의 성별 차이 발생 원인을 분석하였다. 골딘 교수는 대학 졸업 후 남녀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해도 10년 정도가 지나면 상당한 임금격차가 발생하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거의 언제나 여성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사람을 언제나 온콜(on call), 즉 비상대기 상태에 있도록 만드는 탐욕스러운 노동 문화도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었다. 이런 노동조건 속에서 남성은 직장에 온콜 상태가 되어 돌봄과 가정 내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빼앗기는 반면 여성은 돌봄과 가사 노동에 온콜 상태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직장에서의 승진과 커리어 유지에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국내 연구자들 역시 골딘의 이러한 분석이 한국 사회가 겪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출산과 돌봄으로 인한 고용 단절과 직장에서의 임금 차별로 인해 청년들은 결국 출산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이 아닐 뿐만 아니라, 미래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성평등한 사회는 단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이점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추구해야 할 가치다. 최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남성과 여성 직원의 수가 균형을 이룬 기업이 다른 기업들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여성 임원 비율이 30% 이상 되면 그 이하인 기업보다 순수익이 6% 높다는 통계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터 내 성차별·성희롱 상담을 24년간 이어 오며 여성들의 안전한 일자리를 위해 노력해 온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으며, 이주여성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상담해 온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역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가장 열악한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산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 먼저 미래로’라는 슬로건은, 부산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미래로 향하는 도시 부산에서라도, 부디 성평등 실현을 위해 조금은 더 나은 정책적 노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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