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도시

입력 : 2023-11-20 18:17:07 수정 : 2023-11-20 18: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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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사회부 차장

‘쇠락한 노인과 바다의 도시’ 자조하지만
외국인 눈에 비친 부산은 “살고 싶은 도시”
엑스포 유치전 통해 매력·저력 새삼 재조명
개도국엔 희망, 세계엔 ‘글로벌 도시’ 각인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난생 첫 부산을 와본 마케도니아 장모님의 반응은?’이란 제목의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 남편, 마케도니인 아내로 이뤄진 국제결혼 커플이 운영하는 채널인데, 유럽에서 온 장모의 편견 없는 눈에 비친 부산은 어떤 도시일까 하는 궁금증이 앞섰다.

사위가 운전하는 차가 동서고가로에 들어서자 차창 밖 고층빌딩이 빼곡한 부산의 도심 풍광에 압도당하는 눈치였다. 그리스나 크로아티아의 도시처럼 부산은 그저 해수욕장이 있는 작은 도시인 줄 알았는데 도시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놀랐다는 것이다. 부산항대교를 지난 차가 광안대교에 오르자 놀라움을 넘어 경탄이 쏟아졌다. 푸른 물살을 유유히 가르는 순백의 요트가 그리는 한 폭의 수채화에 감탄이 터지고, 크리스털 조각품을 빚어놓은 듯 유려한 외관의 마린시티 초고층 주상복합들이 연출하는 스카이라인의 위용에 경탄을 쏟아냈다.

구남로에서 어묵, 떡볶이, 씨앗호떡 같은 부산 대표 간식을 맛있게 먹고는 깨끗하게 단장된 거리와 질서 있는 시민의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라고 했다. 맨발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를 밟아보고,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던지며 도심의 물놀이가 선사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소녀처럼 즐거워했다.


장모님과 딸은 “수도인 서울에서 사는 게 좋지 않겠느냐 생각했는데, 부산을 와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매일 해변에서 산책할 수 있는 부산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공감 댓글 릴레이’도 이어졌다. “부산의 가치는 부산을 떠나보면 알게 된다. 그립다”는 나이 지긋한 출향 인사의 글에 “부산은 대도시의 이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멋진 산과 바다, 온화한 기온에 서울만큼 사람들에 치이지 않아도 돼 일자리만 있으면 부산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부산을 떠난 청년의 답글이 달렸다. 뉴욕에서 30년을 살다 부산으로 와 은퇴 생활을 즐긴다는 70대는 “일생 여러 곳 살아본 곳 중 부산이 최고”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민들은 “부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개인적으로 올여름 하와이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자못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세계 최고의 휴양지’라는 타이틀을 떼고 보면 연중 따뜻한 기후 정도를 빼고는 부산에 비해 크게 대단할 것도 없었다. ‘태평양의 낙원’이라는 와이키키 비치의 첫인상은 해운대나 광안리해변의 낯익은 풍광과 오버랩 됐고, ‘서핑 성지’라는 노스쇼어 선셋 비치 역시 다국적 인종의 서퍼들이 모였다는 점을 빼면 송정해수욕장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부산은 충분히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쇠락한 노인과 바다의 도시’ 운운하며 애써 폄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하게 됐다. 어느 지각없는 공기업 임원의 ‘부산 촌동네 발언’에는 분개하면서도 오랜 패배주의와 낡은 변방의식에 빠져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최초 등록엑스포로 기록될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위대한 도전은 잊고 지내왔던 부산의 매력과 저력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맞서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언더독’ 부산이 박빙 전세를 이룬 것만 해도 엄청난 이변이다.

리야드와의 한판 승부는 마치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맞닥뜨린 것이나 비슷하다. 리야드는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막강한 ‘오일 머니’를 무기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안기며 물량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맞서 부산은 개발도상국들에게 희망이자 모범 답안이 될 감동적인 성장 스토리와 K컬쳐, 매력적인 관광자원과 도시환경, 시민 열기 등 소프트파워를 앞세워 표심을 끌어당기고 있다.

엑스포 유치전의 ‘야전 사령관’이라 할 박형준 부산시장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각 부처 장관, 여야 국회의원, 재계 총수, 문화계 인사들까지 한마음으로 ‘엑스포 부산 유치’를 외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20여 년의 세월동안 요즘처럼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이 부산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적이 또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전해질 ‘승전보’를 시민 모두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부산은 이번 엑스포 유치 과정 자체가 큰 도전이자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가덕신공항과 북항재개발이 탄력을 받으며 불가역적 사업이 되었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홍보전은 이미 부산을 글로벌 도시로서 세계 무대에 각인시키고 있다. 부산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도시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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