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보면 외국” 2030 붐비는 거리엔 외국어가 표준?

입력 : 2024-01-18 2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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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찾는 전포동·광안리
태국어·일어 등 외국어 간판 즐비
외벽 메뉴판·주소마저 외국어로
이국적 분위기에 상권 도움 기대
거부감에 구청 민원 넣는 시민도
구청, 업소에 한글 병기 요구 공문

부산진구 전포동과 수영구 광안리해변가 등 젊은 층이 붐비는 번화가 음식점 곳곳에 내걸린 외국어 간판. 부산진구 전포동과 수영구 광안리해변가 등 젊은 층이 붐비는 번화가 음식점 곳곳에 내걸린 외국어 간판.

부산에서 2030세대로 붐비는 식당과 술집에 외국어 간판이 ‘뉴 노멀’(새로운 표준)로 떠올랐다. 외부 문물 수용에 거리낌이 없는 해양도시 부산 특유의 장점이 잘 살아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현지 분위기를 살린 이색 간판이 상권 활성화와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다양한 외국어를 쓴 간판에 한글이 없거나 작게 표시되면 거부감을 준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16일 오후 어스름이 깔린 부산진구 전포동 전포사잇길 일대. 화려한 불빛을 자랑하는 간판들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와 그림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일본어로 간판을 장식한 한 양고기 식당에는 20대 손님 발길이 이어졌다. 출입문과 장식품까지 일본어를 활용한 식당과 술집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태국어 간판도 눈에 띄었다. 도심 사찰을 리모델링한 건물에 입주한 태국 식당이었다. 전포카페거리 한 멕시코 식당은 스페인어로 ‘안녕 부산 사람!’ ‘타코 먹으러 가자!’ 등이 적힌 간판을 붙여뒀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 광안리해수욕장에도 특색 있는 외국어 간판이 많았다. 요즘 광안리는 2030 세대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방문지다. 민락동 횟집거리에 자리한 베트남 식당은 간판과 외벽 메뉴판까지 모두 베트남어로 표시했다. 간판에 주소마저 베트남어로 길게 늘어놓았다. 광안리 해변과 골목에 있는 하이볼 바와 어묵집, 중식당 등은 간판을 일본어와 중국어 등으로 표시했다.

외국어 간판이 늘어나면서 거리를 오가는 이들은 흥미롭고 재밌다는 반응을 보인다. 간판뿐 아니라 장식품 등이 현지 분위기를 살려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방문객이 많아져 상권 살리기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광안리에서 만난 이 모(32·부산 남구) 씨는 “간판부터 내부까지 외국 감성을 한국에서 느낄 수 있다”며 “그런 가게들이 모인 이국적인 거리 분위기도 좋다”고 말했다. 전포동을 자주 찾는 김선주(35·부산 동래구) 씨는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 특색 있는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외국어 간판이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글이 병기되지 않거나 상호만 작게 표시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광안리에서 만난 정용복(68·부산 수영구) 씨는 “젊은 친구들과 달리 우리 나이대는 외국어 간판만 보면 어떤 음식을 파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외부 메뉴판마저 한글 안내가 없으면 불편하다”고 말했다.

외국어 간판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일부 시민은 민원을 넣기도 한다. 관할 구청들은 외국어 간판이 옥외광고물법에 어긋나면 해당 업소에 공문을 보낸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 건물이 4층 이상이거나 면적이 5㎡ 이상인 간판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을 병기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전포동이 있는 부산진구청은 지난해 외국어 간판에 한글 병기를 명령하는 공문을 2건 보냈다. 5㎡ 미만 외국어 간판을 단 곳에도 한글 병기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35건 발송했다. 부산진구청 관계자는 “법에 어긋나지 않아도 민원이 들어오면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광안리를 낀 수영구청도 지난해 간판이 5㎡ 이상이거나 건물이 4층 이상인 업소에 한글 병기를 요구하는 공문을 76건 보냈다.

공문 발송으로 외국어 간판에 작게나마 한글을 병기하는 사례는 늘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다. ‘스타벅스’처럼 특허청에 상표권을 등록하면 한글을 병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명시한 ‘특별한 사유’에 포함돼 간판에 외국어만 사용해도 되는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개인 사업자들만 엄격히 제재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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