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여섯 살 난 둘째가 금요일 저녁 몸이 축 늘어지더니 다음 날 열이 펄펄 끓었다. 해열제는 좀체 듣질 않고 체온은 39도를 향해 달려갔다.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가까운 동네 소아과로 향했다. 소아과에서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며 진료 의뢰서를 써줬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둘째는 세 살 때부터 열이 오르면 열성 경련을 했다. 열성 경련으로 눈이 돌아간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향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지난해엔 코로나19에 걸려 열성 경련 탓에 소아병동에서 1주일 가까이 격리 치료를 받는 고생도 했다. 소아 열성 경련은 고열이 지속되면서 의식을 잃고 눈이 돌아가면서 손발이 떨리고 전신이 뻣뻣해지는 증상이다. 열성 경련이 나타나면 먹는 해열제도 듣지 않고 해열 주사를 맞아야 한다. 병원에서는 둘째가 열성 경련을 여러 차례 앓은 적이 있어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간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열성 경련이 있을 때마다 찾았던 그 병원에 그 응급실이었지만, 응급실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119로 전화해 진료 가능 병원을 안내받으라”는 게 전부였다. 119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을 안내받았지만, 소아과 전문의가 없다며 진료가 안 된다는 건 매한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40분은 족히 걸릴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려던 찰나, 119에서 다시 전화가 왔고 근거리에 있는 달빛어린이병원을 안내해 줬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 야간이나 휴일 소아 환자를 진료해 주는 병원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주말에 소아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있다는 데 감사했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소아과 의사들과 간호사분들은 또 어찌나 고마웠는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겪었고 공감할 만한 경험이다.
그날 느낀 점은 두 가지다. 먼저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소아과가 사라지고, 응급실에도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 소아응급환자가 진료받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어린이날 연휴 서울 한복판에서 열이 40도까지 오르던 다섯 살 정욱이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진료를 할 수 없거나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숨졌다. 하지만 그날 이후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비슷한 뉴스가 보도되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응급실 뺑뺑이 경험이 공유되고 있다.
다음은 달빛어린이병원의 존재감이다. 위급 상황 시 응급실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 부산 지역 달빛어린이병원은 4곳이었지만, 이달 1일 서부산권에 2곳이 추가로 문을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럼에도 달빛어린이병원으로는 응급 소아환자에 대한 완벽한 대처가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현재 소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의 인력·시스템 부재로 촉발된 의사 증원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아이 안 낳는다 말만 하지 말고 태어난 아이라도 (소아응급 의료체계의 부실로) 안타깝게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정욱이 사건’ 이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남겼던 말이다. 정부와 우리 사회가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