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두 도시 이야기

입력 : 2024-03-06 18:03:12 수정 : 2024-03-06 18: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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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사회부 차장

모두가 싫어하지만 떠나지 않는 도시 서울
누구나 살고 싶지만 떠나야 하는 도시 부산
신공항·글로벌허브도시 조성 등 현실화로
청년·외국인 몰리는 매력 도시로 거듭나야

“난폭한 운전자와 나쁜 공기 질, 유서 깊은 동네들을 밀어 버리고 획일화된 고층 아파트들로 채운 못생긴 도시다. 모두가 싫어하지만 아무도 떠나지 않는 도시다.”

“바다와 산, 집, 사람, 다채로운 풍광과 분위기가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정, 공동체 의식 같은 게 느껴지는 곳이다.”

최근 두 달 사이에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와 도시들을 평가한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서두의 인용문은 이들의 국내 도시 평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인데,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앞의 도시는 서울이고, 뒤는 부산이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며 미국 뉴요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콜린 마샬은 저서 〈한국 요약 금지〉에서 서울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고 불만투성이라고 짚었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에서 엿보이는 빈부 격차와 불만, 사회구조적 부조리가 ‘서울살이’의 부정할 수 없는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는 서울의 역동성과 편리한 생활 인프라 등을 예찬하면서도 “한국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나라이며, 매력적이지만 좌절과 실망을 안기는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여러 도시에서 생활해 ‘도시 탐구자’라 불리는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도시독법〉이라는 책에서 부산을 두고, “런던과 도쿄 같은 대도시는 삭막한데, 부산은 정이 살아 있고, 도시 속 자연과 소통하는 부분이 흥이 난다”고 호평했다.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그의 대답은 “압도적으로 부산”이었다.

이방인이 제3자의 눈으로 본 우리 모습이 반드시 객관적이거나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 국가의 1·2위 도시의 색깔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청년들이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두 도시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대도시 청년들의 삶의 만족도’란 보고서를 보면 7대 특별·광역시 중 부산 청년들의 행복감이 가장 높았다.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 생활수준, 안전감, 대인관계, 공동체 소속감 등에서도 부산이 단연 1위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청년들이 우울감, 외로움의 증상을 경험하는 빈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역의 청년들이 미래의 삶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주거 여건, 교통 편의성, 외로움, 우울감 등 측면에서 녹록지 않고, 이들이 느끼는 삶의 질 역시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해마다 1만 명에 달하는 부산의 학생과 청년들이 좋은 대학과 번듯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난다. 이들을 기다리는 건 만만치 않은 서울살이의 고단함이다. 다섯 평짜리 원룸에서 높은 물가, 숨막히는 만원 지옥철, 그보다 더 숨막히는 낯선 사람들 사이의 부대낌 속에서 누군가는 순응하며 서울시민으로 거듭나지만, 많은 이들이 삭막한 도시의 주변을 겉돌면서 냄비 바닥에 까맣게 탄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산다.

상당수 부산 청년은 적당한 일자리만 있다면 부산에 남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들에게 부산에는 있지만 서울에는 없는 건 쾌적한 환경과 삶의 쉼표 같은 여유다. 반면 서울에는 있지만 부산에는 없는 것은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지난달 부산일보와 시교육청 등이 주최한 ‘2024 부산인구 미래포럼’에서도 부산 인구소멸 위기 극복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 마련을 첫손에 꼽았다. 부산시의 비전인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청년들이 사랑하는 고향을 등지지 않도록 좋은 일자리를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희망적인 것은 가덕신공항 개항, 산업은행 이전,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등 움츠렸던 부산이 다시 한 번 용틀임할 수 있는 메가 프로젝트들이 차츰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시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부산은 청년과 기업, 외국인과 해외 자본이 몰려드는 매력 넘치는 국제도시로 변모할 수 있다. 이 기회를 날린다면 부산은 현실화된 도시 소멸과 맞닥뜨려야 한다. 부산은 앞으로 미래 100년을 좌우할 결정적인 분기점에 서 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엔진 구축, 국토 균형발전, 과밀화된 수도권의 고통 해소까지 명분은 차고 넘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 탐구자’가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청년들이 제 발로 떠나는 아이러니를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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