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계속 변화해야 하고 그걸 작품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미술 취재를 하면 작가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단적으로 드러낸 말처럼 다가왔다. 물론 자기 복제를 계속하며 좀 편하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작가들도 꽤 있다.
아리안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정명·김원백 2인전’을 돌아보며 두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을 이어오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장르에도, 틀에도 매이지 않는 것 같은 작품들은 실험적이고 독보적이다. 아마도 현대미술의 자유로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80대의 김정명 작가, 70대의 김원백 작가는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험을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현대미술이 척박했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지난했던 세월을 작가 정신으로 버틴 이들이다. 그것도 지역에서 현대미술로 줄곧 작품을 이어왔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인정해야 할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 역시 지난해와 올해 최신작들로 구성하며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명 작가는 미술판에선 ‘타고난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통한다. 탈 장르(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와 탈 형식(조각과 오브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 탈 논리(의미의 밑바닥에서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김정명 작가의 작업은 후배 작가들보다 더 예외적이다. 끊임없이 형식의 지점들을 옮겨 다니고 의미의 지점들을 가로지르면서도 하나같이 완성도가 높다. 그렇게 열어놓은 지평들이 예나 지금이나 시사해 주는 것들이 많다”라고 칭찬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에너지 교감’ ‘빠져나오다’ 등의 작품 역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어섰고, 표현 방식 역시 독특하고 예외적이다. 콜라주 기법과 사용한 재료들 역시 경쾌하고 흥미로워 보는 재미가 있다.
김원백 작가의 작품은 꼭 직접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갤러리에 가기 전 김 작가의 전시 작품 이미지를 비롯해 과거 작품들도 미리 봤다. 색감이 예쁘고 형태가 독특하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작품은 질감과 형태, 색감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수 많은 색 천을 오리고 붙여서 완전히 새로운 조형미를 만들어냈다.
김 작가는 “칼과 가위가 나에게는 붓이고, 색 천이 물감이고 재료이다. 아크릴 물감을 반복 채색한 천을 자르고 뚫고 오리고 붙여서 작품을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주요 작품 시리즈인 ‘유전자로부터’는 수많은 천을 자르고 칠하고 붙이는 과정이 마치 세포핵을 통해 세포가 분열되고 증식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작업 역시 유기적으로 진화되길 바라는 마음도 표현했다.
수많은 천을 자르고 칠하고 붙이는 과정은 사실 작가에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무척 고단한 작업이다. 작가는 수행자처럼, 구도자처럼 그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작위와 무작위의 순환이 유전자라는 제목의 특성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선 전시장 한 벽을 가득 채운 120호 대작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9일까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