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사회의 물리현상-민주주의의 균형추

입력 : 2024-04-02 18:14:22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편향된 정보 의존 양극화 심화
이념 갈등에도 균형 맞춰 가야
공존 실천이 곧 민주주의 원칙

사회에도 물리적인 성질이 있다.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경향이 그렇다. 물질이 뜨거워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비열이라고 하는데, 비열이 작을수록 쉽게 덥혀지고 쉽게 식는다. 비열이 클수록 천천히 달아올라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비열이 작은 셈이다. 비열은 에너지가 전파되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 확산 속도와 밀도(단위 부피당 질량)가 커질수록 비열은 작아진다. 우리 사회의 질량(변화에 저항하는 정도)도 그다지 큰 것 같지 않다. 비교적 능동적으로 변하는 편에 속하는 듯하다.

반면 확산(전파)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핫’ 뉴스로 온 나라가 뜨거워지는 것이 순식간이다. 이 전파 속도는 매질에 따라 정해지는 고유양인데, 매질의 밀도에 반비례하고 장력에 비례한다. 가늘고 가벼울수록, 또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속도가 커지고 그 진동수도 커진다. 헬륨처럼 가벼운 매질에서 같은 힘을 주어 말하면 속도가 커지고 진동수가 올라가는 것(높은 소리가 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즉, 이 사회는 비교적 가벼운 데 반해, 사회적 빈부나 이해의 격차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상당히 커서 전파 속도가 매우 커진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우리 사회에 딱 맞는 전략 산업인 셈이다.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 나름 상당한 강점이다.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이 빨라졌는데도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자석의 극성과는 정반대로, 같은 성향끼리는 당겨서 잘 뭉쳐지는데 다른 성향끼리는 서로 상극이 돼 멀어지고 소통이 단절되는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진다. 정보화가 고도화될수록 사회의 공감대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극성에 따라 편향된 정보로만 똘똘 뭉친 양극화된 집단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양극화된 30%씩을 제외한, 정치적 성향이 미미한 부동층 40%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늘 관건이 된다. 결국 결정권은 중도 40%에게 있는 셈이다. 어떻게 결정돼도 양극화된 30%는 그대로 있어서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부동층은 비교적 가볍고 온갖 정보에 민감해서 짧은 시간 동안 쏠림 현상이 상당하다. 이는 반도체를 이용한 신호제어의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된 두 집단은 각기 배타적 정의감에 불타고 있는데, 서로 반대편을 불의로 규정하고 있어서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지 유념할 것은 이 사회의 균형추가 각기 정의를 주장하는 양극단이 아니라 부동층의 쏠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철이 끝나면 대부분의 경우 부동층은, 마치 작용에 대한 반작용처럼, 본인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마치 선거가 어느 한쪽의 ‘정의’에 대한 진지한 판결을 내린 것처럼 돼버리기 때문이다. 실은 정의감에 도취된 다른 한 편에 대한 적절한 차이의 경종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 결과 잠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균형추는 다음 선거에서 부동층의 반작용에 의해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어쩌면 정치적 신념이 약하거나 없는 부동층의 불안한 쏠림이 염려스럽고 못 미더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이들에 의해,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사회는 균형을 잡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저울추를 들고 좌우로 움직이며 중심을 찾아가듯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서히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40여 년 동안 균형추 없이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적 경험을 가졌었다. 1990년대 이후 비로소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그나마 자연스럽게 여당과 야당을 오고 가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균형 잡기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데, 이는 평형의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거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 정의로움을 공인받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국민은 이를 여지없이 알아챈다. 어느 쪽이든 정의감에 도취된 나머지 절대 다수인 70%의 국민을 ‘불온 세력’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단연코 말하건대 정답은 없다.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오답이다. 양비론도 불가지론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진실에 가까워지는 위대한 민주적 공존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국민을 이기는 민주정부는 없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