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부산은 분권이다

입력 : 2024-04-17 17: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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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부산은 왜?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더러 있다. 가령 내가 관여하는 문학 영역에서 부산은 여타 지역과 다른 독자성과 자율성을 발휘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대구나 광주가 서울과 소통하고 연계하려고 애를 쓴다면 부산은 그저 무덤덤하게 독자적인 자기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와 소설 그리고 비평에서 발현하는 양상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양문학은 부산의 특이성을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널리 회자하는 비평의 도시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이에 상응한다. 무엇보다 문인들의 활동 양식이 중심에 흡인되지 않고 자기 세계를 견지하면서 특성을 형성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와 같은 부산의 특수성은 부산과 부산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대변하면서 지역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방법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만큼 부산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20세기 후반 황해 시대로 인천 부상

서울 살찌우는 수도권 영역 형성돼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 논의

일극 체제에 빨리 대처하는 운동 싹 터

2030부산엑스포 기점 중대 국면 맞아

내적으로 원심력 발산할 방법 강구를

부산의 독자성, 자율성, 특수성, 특이성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부산 사람들은 상실의 기억을 토로하거나 향수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한국에서 부산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부산이 없는 한국은 없었다.’ 진한 자부와 동시에 어떤 허전함을 품은 말들인데 또한 다시 해보자는 의지가 없지 않다. 근대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부산은 우리나라 관문으로 그 위상이 드높았다. 개항 이후 식민도시로 성장하였으나 지정학적 중요성에서 수위를 유지했다. 무수한 내외국의 사람들이 들고난 장소(topos)가 부산이다. 그 기억의 적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한국전쟁에서 부산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지 않았는가? 과연 ‘부산 없는 한국은 없다’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경제 부흥을 일으킨 산파역도 부산이다. 부산항이 있어 자원이 없는 나라의 숙명을 딛고 수출입국에 성공했다.

부산은 근대화의 주축일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주역이다. 한편으로 제조업 융성을 이끌고 다른 한편으로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도시가 1970~80년대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서면에서 사상을 지나서 장림에 이르는 공단에서 일한 노동자와 그들이 생산한 그 많은 수출상품을 상기할 수 있고 부마항쟁에서 유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거리의 함성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수행한 도시가 어디에 있는가? 그만큼 부산이 지닌 특별한 심성이 틀리지 않는다. 적어도 20세기 한국의 역사에서 부산은 서울에 대응할 만한 위상과 내력을 지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물결은 오히려 부산의 파고를 높이는 역설을 가져왔다. 중국의 융성과 더불어 진행된 황해 시대는 인천을 부상하게 하는 한편 서울을 살찌우는 수도권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급기야 제조업의 쇠퇴는 부산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세계화와 더불어 중심이 강화되는 형국이 일국 안에서도 서서히 진행된 사정은 1980년대부터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 민주화 이후는 부산이 하강하는 국면과 겹친다. 지역적 불균등 발전에 눈을 뜬 지역주의가 논의된 시점도 이때다. 지역 문인들과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중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일찍이 각성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근대화 과정에서 경부의 축으로 오랫동안 균형을 유지한 부산이 하락하는 형국을 예민하게 감각한 셈이다. 물론 강렬한 이분법으로 중심을 적대하는 경향조차 나타나면서 사태가 왜곡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일극 체제로 기우는 정세를 민활하게 대처하는 운동이 싹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분권운동이 시동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운동이 시발한 진원이 부산이다. 부산은 거의 30여 년에 이르는 분권 운동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 가운데 장년에 이른 사람도 많다. 여전히 분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으니 평생 분권에 투신한 분들이다.

부산이 분권의 메카가 된 사정은 단지 부산의 지위 회복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도권이라는 일극 체제가 확장을 거듭하는 큰 가속의 시대에 직면해, 지역이 붕괴하고 소멸하는 사태는 반드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발신한 분권운동은 공공기관의 지역 분산, 행정수도 건설 등으로 이어졌으나 요즘은 정체 국면을 맞고 있다. 발본적인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도약이 요긴한 시점이다. 2030부산엑스포는 부산이 진행한 분권운동의 중대 국면이었다. 좌절의 아픔을 겪은 만큼 그와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아니라, 일극의 구심력을 약화하면서 내부로부터 원심력을 발산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양과 수산은 부산의 특수성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보편성에 상응한다. 왜 우리를 그저 부산이라고만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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