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성수기” 러닝크루 들어가서 무작정 뛰어보기 [혼잘알]⑥

입력 : 2024-04-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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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게 싫어!” “전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요.” MBC 국민예능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남긴 말입니다. ‘혼생’이 더 즐겁다는 박명수의 어록은 수많은 ‘짤’을 탄생시킬 정도로 공감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사람과 친해지지 않아도, 친구나 애인이 없어도 나 홀로 재밌게 놀러 다닐 수 있는 방법을. 둘도 없는 '찐친'이 전하는 후기라면 더 살갑겠지요? 그래서 '츤데레 스타일 명수체’로 전해드립니다! 그러니 막말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자제해 주시길^^


어흐 피곤해! 어흐 어흐~ 봄이라 그런가 너무 피곤하네. 그런데 저 양반들은 무슨 힘이 남아돌아서 저렇게 아침부터 뛰어다니지?

~하는 생각, 많이들 해봤지? 요새 여기저기서 단체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잖아. 나도 궁금해서 찾아보고, 또 찾아본 김에 같이 뛰어도 봤어. 러닝에 관심은 있는데 소심해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은 잘 읽어보라고.

여럿이 뛰어다니는 이 사람들은 대부분 ‘러닝크루’야. 야외 러닝 동호회 같은 거지. 아마 당근마켓에서 “20, 30대 러닝크루 모집” 같은 광고 한 번씩 본 적 있을걸?

그동안 이런 광고가 보여도 대충 넘겼는데, 주말 아침에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직접 보니까 관심이 생기더라고. 마침 조깅하기에 딱 좋은 날씨잖아? 그래서 당근마켓에서 ‘러닝’을 검색해봤지.


러닝크루 ‘HIT THE HIGH’ 단체 인증샷. HIT THE HIGH 제공 러닝크루 ‘HIT THE HIGH’ 단체 인증샷. HIT THE HIGH 제공

러닝이 인기인지 웬만한 동네마다 동호회가 있더라고. 나는 남천동에 사니까 이쪽에서 활동이 활발해 보이는 모임에 가입신청을 했어. 간단한 자기소개를 적고 기다렸더니 승인이 됐는데, 모임 공지를 비롯한 소통은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하고 있었어. 링크를 눌러서 대화방에 입장을 했더니 환영 인사랑 이모티콘이 막 이어지는데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

내가 들어간 크루 이름은 ‘HIT THE HIGH’인데, 운영 방식이 나름 체계적이었어. 일단 매주 일요일에 ‘정규런’ 투표를 열어. 그렇게 참여 인원을 집계하고 인원이 많은 날에 정규런을 진행하기로 정하는 거지. 보통 저녁 7시 30분까지 광안리 바닷가나 수영강 쪽에 집결한 뒤에 6~7km 거리를 가볍게 뛰는 식이야. 참고로, 30년째 러닝을 즐긴다는 배우 유해진도 한 번에 7km씩 뛴다고 하더라고. 나는 목요일 정규런에 나가기로 했어. 평소 축구를 하니까 뛰는 건 자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꽤 오래 뛰어야 한다는 게 좀 걱정이 됐어.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쭈구리걸랑….


혼자 있는 게 좋거든요…. MBC ‘무한도전’ 영상 캡처 혼자 있는 게 좋거든요…. MBC ‘무한도전’ 영상 캡처

또 하나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미세먼지야. 하필 정규런 당일에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수준이었어. 참여 투표했던 한 명이 ‘오늘은 패스’ 선언을 하더라고. 나도 고민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강행하는 분위기인거야. 나도 이왕 뛰기로 한거, 에라 모르겠다~하고 나가봤어.

집결지는 민락 회센터 쪽 모 상가 앞이었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어색하게 인사하고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지. 이날 인원은 총 11명인데, 나를 포함해서 처음 온 신입이 4명이었어. 인원 체크가 끝난 뒤엔 운영진인 황규연(29) 씨가 인근 공터로 안내했어. 부상 방지 차원에서 가벼운 준비운동을 하고 나면 바로 출발이야.


‘밀락더마켓’ 인근에서 출발해 ‘남천동매립지 방파제’까지 뛰는 코스인데, 보면 알겠지만 거리가 꽤 있어. 여길 왕복해야 하니 러닝을 한 번도 안 해본 ‘쌩초보’는 뛰기 힘들 수도 있지. 구글 지도 캡처 ‘밀락더마켓’ 인근에서 출발해 ‘남천동매립지 방파제’까지 뛰는 코스인데, 보면 알겠지만 거리가 꽤 있어. 여길 왕복해야 하니 러닝을 한 번도 안 해본 ‘쌩초보’는 뛰기 힘들 수도 있지. 구글 지도 캡처

내가 뛰었던 광안리 코스는 이래. 위에 지도를 봐도 되고. 밀락더마켓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안해변로를 따라 뛰다가 ‘광안리 해양레포츠센터’에서 바닷가 쪽으로 꺾어. 그리고 삼익비치타운 근처 산책길 알지? 거기가 광안해변로 54번길이거든? 54번길 끝까지 뛰면 ‘남천동매립지 방파제’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조금 더 뛰면 반환점이야.

반환점으로 출발할 때는 초심자도 뛸 수 있도록 페이스를 조절해. 처음 온 신입들이 맨 앞에서 뛰고, 숙련자들이 맨 뒤에서 뛰는 식이지. 그렇다고 마냥 천천히 뛰는 건 절대 아니야. 포털사이트 지도상으로는 도보로 40~50분이 걸리는 거리를 7분 40초 만에 주파했어.


광안해변로로 진입하는 크루들. 아직까지는 멀쩡하고 쌩쌩한 모습이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광안해변로로 진입하는 크루들. 아직까지는 멀쩡하고 쌩쌩한 모습이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광안해변로를 내달리는 모습. 초보자들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달리는데, 인파나 자전거 등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탈 때보다 신경 쓸 게 많은 편이야. 그만큼 에너지도 더 소모되고 동원되는 근육도 많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광안해변로를 내달리는 모습. 초보자들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달리는데, 인파나 자전거 등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탈 때보다 신경 쓸 게 많은 편이야. 그만큼 에너지도 더 소모되고 동원되는 근육도 많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단체로 야외에서 뛰는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애초 운동을 목적으로 모여서 그런지 묵묵히 뛰기만 해도 어색하지 않더라고. 그리고 혼자였으면 조금만 지쳐도 중간에 쉽게 멈췄을 텐데, 다 같이 뛰다 보니까 페이스에 맞춰서 끝까지 달리게 되는 것도 좋았어. 반환점에 도착해서는 다들 숨을 헐떡이면서 잠시 쉬었어. 힘들긴 해도 기분은 상쾌하더라. 간단히 기념 촬영도 했는데, 다들 땀 범벅이라 일부러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찍었어.


반환점에서 찍은 단체 인증샷. 잘 안 보이겠지만 제일 오른쪽 아래가 나여~.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반환점에서 찍은 단체 인증샷. 잘 안 보이겠지만 제일 오른쪽 아래가 나여~.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문제는 이 코스를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거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더라고. 이미 더워 죽겠는데…집도 가깝겠다, 그냥 나는 집에 가겠다고 할까 생각도 잠깐 들었어.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뛴 거야.

돌아갈 때는 개인 페이스대로 자유롭게 뛰어도 괜찮았어. ‘남자들끼리 빡세게 뛰어보자’는 말에 자극을 받아서 막 뛰었는데, 분수를 모르고 고수들 속도에 맞춰서 빨리 뛰다가 오버페이스를 해버렸네? 10년 넘게 한 축구가 소용이 없었다 이거야.


광안대교를 정면으로 보면서 달릴 수 있는 구간인데 영상으로 찍어보니까 그럴싸하지 않니?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광안대교를 정면으로 보면서 달릴 수 있는 구간인데 영상으로 찍어보니까 그럴싸하지 않니?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하는 수 없이 나랑 페이스가 비슷한 멤버 2명이랑 같이 뛰었어. 돌아가는 길 내내 들었던 생각은 ‘혼자 뛰었으면 절대 불가능했겠다’는 거였어. 같이 뛰는 러닝메이트들이 있으니 반강제로 뛰는 거지, 옆에 아무도 없었으면 지쳐서 걸었을 게 뻔했어. 함께 뛴 2명도 러닝크루 활동의 최고 장점이 동기부여라고 입을 모았어. 혼자 뛸 때는 한 번에 주파하지 못할 코스인데, 단체로 뛰면 어떻게든 해내게 된다는 거지.

나도 러닝메이트들 덕에 복귀 코스는 6분대를 기록할 수 있었어. 나 정도면 잘 뛰는 거다? 처음엔 왕복에 총 1시간이나 걸린 사람도 있대. 가는 길은 어찌저찌 같이 뛰었는데, 돌아올 때는 지쳐서 거의 걸어온 거지.

이렇게 얘기하면 ‘나도 못 뛰면 어떡하지’ 싶을 수 있는데, 운영진이 마지막까지 러닝메이트 역할을 해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이날 초심자들도 대부분 10분 내외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어. 그리고 꾸준히 뛰면 무조건 실력이 올라간대. 처음엔 제대로 뛰지도 못했는데, 크루 활동 한 달 반 만에 ‘복귀 5분 컷’을 달성한 여성 회원도 있어. 물론, 애초부터 잘 뛰어서 4분 대에 돌아오는 ‘괴물’도 있고.


러닝 꽤 한다는 크루원들. 복귀하는 길에 이 사람들 따라 잡으려고 스퍼트 올렸다가 죽는 줄 알았어. 함부로 객기 부리기 금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러닝 꽤 한다는 크루원들. 복귀하는 길에 이 사람들 따라 잡으려고 스퍼트 올렸다가 죽는 줄 알았어. 함부로 객기 부리기 금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의외였던 점은 여성이 많았다는 거야. 야외 스포츠인 만큼 평소엔 남성 비율이 더 높다고 하던데, 이날은 여성이 6명, 남성이 5명이라 이례적으로 여초였어. 요새 러닝이 여성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라 하더라고. 이날 신입 4명 중에도 나를 뺀 나머지 3명이 모두 여자였어.

여성 비율이 높으면 이성과 교제를 노리고 들어오는 ‘불순분자’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크루는 비교적 클린하게 운영되고 있었어. 술 모임 등 친목 위주로 돌아가는 러닝 크루도 있는데, 여긴 철저히 러닝 위주로 일정을 잡아. 그래서 그런지 이날도 마무리 체조를 하고 해산하면서 밥 먹을 사람을 모았더니 남자 5명만 남더라고. 다같이 돼지국밥 한 그릇씩 먹고 깔끔하게 헤어졌어. 식사하면서 러닝의 이점을 물었더니 공통적으로는 심폐지구력이 크게 좋아지는 걸 꼽았고, 잠이 잘 와서 생활습관이 좋아졌다거나 체중관리가 쉽다는 등 다양한 얘기가 나왔어.

운영진인 규연 씨에 따르면 야외 러닝은 계절과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금이 완전 성수기래. 실제로 단체 대화방에 수시로 사람이 드나들고, 총 인원이 150명에 달해. 정규런 참여자도 보통 한 자릿수였는데 요새는 10명을 쉽게 넘기고, 참여자가 많아지니 정규런 횟수도 많아졌어. 매주 1, 2회 진행하던 게 4, 5회까지도 늘어난 상황이야.

시간과 장소만 맞으면 소수 인원으로도 가능한 ‘번개 런’도 잦아졌어.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모닝 런’을 즐기는 회원들도 있으니 선택의 폭이 아주 넓다고.


러닝 자세에 따라 근육이나 인대에 가해지는 부하가 달라지니까 각자 자신에게 맞는 주법을 잘 선택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어. 이미지투데이 러닝 자세에 따라 근육이나 인대에 가해지는 부하가 달라지니까 각자 자신에게 맞는 주법을 잘 선택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어. 이미지투데이

아, 그런데 같이 뛰어보고 싶다면 러닝화는 필수야. 러닝화도 종류가 여럿인데 쿠션화와 레이싱화로 대별돼. 레이싱화는 반발력이 좋지만 부상 위험도 크기 때문에 초보자는 무조건 충격 흡수가 잘 되는 쿠션화를 신는 게 좋아. 뛴 거리나 걸린 시간 등 기록을 재고 싶다면 나이키에서 개발한 ‘런 클럽’ 앱을 미리 설치하고 써보는 걸 추천해.

또 땅을 디딜 때 발의 어느 부분이 먼저 닿을지도 신경 쓰는 게 좋아. 발 앞부분이 지면에 먼저 닿는 ‘포어풋 스트라이크’는 에너지 소모가 커서 단거리 달리기에 적합하고, 중장거리는 발바닥 중간 부분이 먼저 닿는 ‘미드풋 스트라이크’와 발 뒤꿈치가 먼저 닿는 ‘리어풋 스트라이크’(힐 스트라이크) 중 자신의 몸에 맞는 방식으로 뛰면 돼. 둘 중 어떤 방법이 효율적이고 안전한 지를 놓고는 학계에서도 수십 년째 의견이 분분해.

한때는 리어풋 스트라이크가 무릎 등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이 큰 잘못된 주법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리어풋과 미드풋의 경우 각각 근육과 관절이 받는 부하량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몸에 맞는 방식으로 뛰면 된다는 게 스포츠 의학 전문가들의 분석이야.

연구에 따르면 미드풋 러너들은 발목, 아킬레스건, 종아리의 부상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리어풋 러너들은 무릎, 고관절, 햄스트링, 족저근막의 부상 빈도가 높다고 하니 자기 약점을 잘 파악해서 뛰란 말이야.

전문가들은 부상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달리려면 발이 땅에 닿는 횟수인 ‘케이던스’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 과한 보폭(오버 스트라이드)으로 뛰면 몸이 받는 충격이 크고 소모되는 에너지도 많은데, 케이던스를 높이면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는거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적정 케이던스는 분당 180걸음이니까 러닝할 때 이걸 반영해서 뛰어보라고.

난 우리 크루들이랑 또 뛰러 가야 해서 이만~.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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