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원영적으로 생각해 본 ‘노인과 바다’

입력 : 2024-06-12 1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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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노인과 바다 오명 속 기회 찾아야
인프라 자연환경 덕 골든 시니어 선호
실버 산업 테스트베드 잠재력 높아
부산의 문제가 청년 모으는 힘 되길

컵에 물이 반이 있다. 이를 보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한다. 부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할 것이다. 최근에는 긍정적, 부정적 사고 외에 ‘원영적 사고’가 인기다. “내가 연습을 끝내고 딱 물을 먹으려고 했는데 글쎄 물이 딱 반 정도 남은 거야. 다 먹기에는 너무 많고 덜 먹기에는 너무 적고 딱 반만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럭키비키자나.”


원영적 사고는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일종의 밈이다. 마지막에 붙는 럭키비키는 럭키와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가 합쳐진 말이다.

부산은 청년층이 유출되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과 바다’는 어느새 부산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부산의 고령화 속도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다. 2022년 기준 부산의 50세 이상 인구는 153만 2000명으로 전체의 46.5%를 차지했다. 둘 중 하나는 50세 이상인 ‘장노년’인 셈. 203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도시에서 청년이 사라지는 것은 부정적인 부분이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힘을 내어 원영적으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물론 모든 선진국들이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어. 노인 관련 산업이 앞으로 유망할 거야. 이를 테스트해 볼 시장이 필요해. 다른 지역에서 실험하기엔 다른 인프라가 부족해 어려웠는데 규모와 수요를 모두 갖춘 부산이 딱 맞네. 완전 럭키부기자나.’ 참고로 부기는 부산시의 소통 캐릭터다.

실제로 원영적 사고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스타트업도 있다. ‘웨이어스’는 실버세대의 관심사에 기반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골프·재테크·여행·건강 등 5060세대가 즐길 수 있는 주제를 선정, 오프라인 특강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한다.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는 만성기저질환자를 위한 특수 헬스케어를 전문으로 하는 부산의 스타트업이다. 재활운동 센터인 ‘어댑핏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며 AI·모션센서 등 최신 ICT 기술이 도입된 ‘어댑핏플러스’라는 맞춤형 운동장비를 개발한 업체다.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규모의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사업 모델들이다.

부산은 따뜻한 날씨와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 그리고 제2의 도시 인프라 덕에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기에 의료 시설도 풍부하니 금상첨화다. 복잡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유있는 '골든 시니어'들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 최근 부산 해안가를 중심으로 골든 시니어를 위한 고급 시설들이 추진되는 배경에는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의 5060세대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각종 연금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추고, 건강 관리도 일찍부터 해 충분한 소비력을 갖춘 이들이 많다. 경제력을 갖춘 시니어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실버 비즈니스 모델은 더 단단해진다. 테스트베드로서 부산이 가지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보여지는 이유다.

미국은 시니어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도시 생태계를 만든 곳들이 있다. 플로리다는 '더빌리지스'와 같은 대규모 은퇴자촌을 중심으로 이뤄진 도시가 많아 퇴직 후 가고 싶은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라구나우즈 빌리지’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아이치현 오부시는 국립장수의료센터를 중심으로 도시 내 건강 의료 복지 요양시설이 들어서 하나의 산업군을 이룬다.

'원영적으로' 타이밍 좋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지원체계도 완성되고 있다. 중기부는 올해 부산 주력산업으로 초정밀소재부품, 저온고압에너지공급시스템과 함께 실버케어테크를 선정했다. 또 부산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인 KDB산업은행이 지난 4일 ‘KDB 넥스트원(NextONE) 부산’을 개소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부산시도 올해 연말까지 창업지원 전담 기관인 부산창업청을 설립한다. 창업청을 중심으로 창업지원 운영체계를 고도화하고 창업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등 지역 창업생태계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부산 북항에도 스타트업파크가 들어서 새로운 먹거리 개발에 나선다. 이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싶은 청년들을 위한 지원체계가 하나둘 갖춰지는 셈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이 다시 청년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부산의 문제라고 생각됐던 노인과 바다가 부산을 되살리는 키가 되다니 이건 완전 럭키부기자나'라고 원영이처럼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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