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화양연화' 홍콩

입력 : 2024-07-02 18: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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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홍콩을 자주 찾았다. 아찔하게 높은 빌딩 숲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복잡하고 미묘하게 섞인 매력적인 도시였다. 침사추이에 달이 뜨면 수많은 건물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은 지금도 잊기 어려울 정도이다. 장만옥과 양조위가 불운한 사랑을 이어가던 영화 ‘화양연화’의 아파트와 뒷골목을 배회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뜻하는 그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새우완탕을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면서 ‘나의 아름다운 날은 언제일까’라는 불온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영화 비디오테이프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바바리코트 휘날리며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던 황후상 광장, ‘첨밀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가난한 연인 여명과 장만옥이 콧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던 캔턴 로드도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그들의 애절함을 동경하기도 했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양조위가 타고 다니던 센트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홍콩의 낭만과 자유, 번영과 꿈을 갈망했다. 그 당시의 홍콩은 그렇게 모두가 꿈꾸던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홍콩의 가장 화려했던 시간이 저물고 있다. 지난 1일로 홍콩 반환 27주년,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범죄인 인도조례(송환법)’에 반대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지 5년이 지났다. 중국 베이징 정부가 2020년 최고 무기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킨 이후 ‘홍콩의 중국화’가 더욱 노골화됐기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출판의 자유가 사라진 홍콩에서 사람들은 진심을 서랍 깊숙이 감추고 어둠 속으로 숨거나, 해외로 떠났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 토박이 20만 명 이상이 망명했다고 한다. 그 빈자리를 중국 본토인들이 채우면서 “홍콩에 남은 건 노인과 본토인뿐”이란 푸념마저 나돌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글로벌 기업이 탈출한 빌딩에는 중국 기업이 대신 들어오고 있다. 홍콩의 번영을 이끌었던 해외 자본이 떠나면서 빈껍데기만 남은 도시, 중국의 한낱 지방 도시라는 조소까지 받을 정도이다. 장만옥과 양조위가 슬픈 사랑을 속삭이던 홍콩은 자유에서 가장 거리가 먼 도시가 된 셈이다. 세계 3대 금융허브, 동양의 진주로 불렸던 홍콩의 화양연화는 그렇게 끝이 나는가 보다. 인구 700만 명의 작은(?) 도시 하나조차 제 모습대로 품지 못하는 ‘대국’ 베이징의 옹졸함이 섬뜩할 뿐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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