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당시 이수경 부산종합사회복지관장(현 초록우산 부회장)은 학업성적이 우수하지만 서울의 명문대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어 속상해하던 아이를 만났다. 이 아이의 후원자를 찾던 중 어려운 아이들 일이라면 늘 앞장서 도움을 주던 (주)DSK 황종석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리고 이 아이를 비롯해 아이들이 가정형편으로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아이리더' 사업을 기획해 후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황종석 후원자는 처음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이 아닌데 너무 불가능한 계획이 아닐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버팀목이 되어 주자'고 후원을 결정했다. 초록우산 아이리더 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아이리더 사업은 2009년 초록우산 본부 시범사업으로 진행됐다. 2013년부터 ‘부산을 이끌 리더는 부산이 키운다’는 취지 아래 초록우산, 부산시교육청, 부산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인재 양성 사업이 됐다. 2008년 1명의 후원아동으로 시작한 아이리더 사업은 2023년까지 1474명(전국 기준)으로 확대됐다. 부산은 2024년 7월 현재 85명의 후원자(드림멘토)가 184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아이리더에 선정되면 학업, 예술, 체육, 자율분야에서 연간 최소 500만 원 이상의 재능계발비를 받게 된다. 재능계발비는 전문교육과정 연계비, 교재·교구 구입비, 대회 참가비, 비전수립 활동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신청 대상은 학업 분야는 중2~고2까지이며 예체능과 자율 분야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다.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로 해당 분야에 재능이 있어야 하며 서류, 면접 등을 통해 선발한다. 아이리더 사업은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매년 성적·경제적 상황 등 재사정을 통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중도탈락하는 아이리더도 있다.
아이들은 드림멘토를 보면서 자신감을 키우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구체화한다. 초록우산은 ‘드림멘토 DAY(데이)’를 마련해 드림멘토가 아이리더들에게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른 과정과 비결을 전하는 장을 마련한다. 드림멘토는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리더들과 수시로 교류하며 성장 과정을 함께하고 응원한다.
지난 5월 31일 부산 남구 대연동 그랜드모먼트에서 열린 ‘2024 초록우산 아이리더 발대식’에 참석했다. 발대식 현장에서 드림멘토와 아이리더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행사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2023년 6월 아이리더를 졸업한 한 대학생이 아이리더 후배들을 위해 후원금을 기부한 것이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이 학생은 아이리더 사업을 통해 고등학생 때 미술학원을 다닐 수 있었고 콘텐츠 디자인 분야로 유명한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고 한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이 학생은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고, 아이리더 후배들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갈수록 소득에 따라 교육격차가 심화하는 현실에서 초록우산 아이리더 사업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고소득층이 자녀들을 학원에 더 많이 보내면서 사교육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가구 중 소득 상위 20%(5분위)는 월평균 교육비로 63만 3000원을 썼다. 반면 2인 이상 가구 중 소득 하위 20%(1분위)는 지난해 월평균 교육비로 7만 6000원을 썼다. 5분위 가구가 지출한 교육비의 8분의 1 수준이다. 또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의과대학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1050명 학생 중 고소득층인 소득 9·10분위인 학생은 74.4%(781명)에 달했다. 사교육 영향력과 의존도가 커지면서 고소득이 보장된 대학에 고소득층 자녀가 주로 진학했다는 의미다. 양극화 사회로 변해가면서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가 아닌 장벽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리더 사업은 청소년들이 경제적 격차로 인해 꿈과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이리더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아이리더 사업이 끊어져 가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제가 제 앞길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밝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 혼자 걸어가는 게 아니니까요. 잔뜩 기대해 주세요. 멋진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한 아이리더의 이 말에서 지역의 미래와 희망을 발견한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