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암소, 혈청소를 거쳐 일본으로 끌려갔다

입력 : 2024-07-25 13:15:06 수정 : 2024-07-25 14: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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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조선 / 임채성

일제강점기 조선 음식 연구서
쌀·소·홍삼·우유·사과 등 다뤄
첫 맥주 공장 부산에 생길 뻔


조선흥업주식회사 30주년 기념지에 실린 1936년 평양 우시장의 모습. 돌베개 제공 조선흥업주식회사 30주년 기념지에 실린 1936년 평양 우시장의 모습. 돌베개 제공

부산 송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학교 단골 소풍 장소는 ‘혈청소(암남공원)’였다. 지금이야 경치 좋은 것을 알지만 그때는 왜 맨날 이름도 이상한 그곳으로 가는지 불만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음식에 관한 연구서 <음식조선>을 보고 의문이 말끔하게 풀렸다. 혈청소는 소과 관련이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가축 중에서 말·돼지·닭 등은 체질이 왜소하고 열등하지만, 축우(畜牛)는 성능이나 체격이 우수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일본 제국권 안으로 조선이 편입된 것을 두고 “하늘은 조국에 일대의 좋은 목장을 베풀어 주셨다”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일본의 소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주로 부산에서 조선 소를 이출(移出)했다. 조선 소의 대량 수입으로 가축 전염병인 우역(牛疫)이 일본에 창궐하자, 1911년 부산 송도에 우역혈청제조소를 설치했다. 아직도 귀에 익은 혈청소란 지명은 우역혈청제조소를 줄인 말이었다. 일제는 이곳을 통해 주로 조선의 우량한 암소를 일본으로 끌고 갔다. 그 숫자가 1차 세계대전 후에는 매년 4만~6만 마리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조선 소는 전염병에는 강해졌지만, 1940년대 초까지 체고와 체중이 저하되는 열등화가 진행되고 말았다.

‘미각의 서양화’라고 표현한 맥주 이야기도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조선의 양반은 약주, 서민층은 소주나 탁주를 주로 마셨다. 해외에서 수입된 맥주는 양반층에 신선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조선의 맥주 최대 소비지는 경성과 부산이었다니 우리 부산에 대한 쓸데없는 자부심이 샘솟는다. ‘대일본맥주’ 회사는 맥주 소비가 늘자 조선에 맥주공장을 세우기로 한다. 경성·평양·부산을 답사한 뒤 부산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영등포에 공장을 보유한 요업업자들이 토지 매각 운동을 펼치며 설득하자 마음을 돌렸다니 못내 아쉽다.

처음에는 대일본맥주의 조선 분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의외로 조선총독부의 방침에 따라 조선의 실업가들과 제휴해 별개의 조선맥주회사가 창립된다. 그 이후 맥주회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며 맥주 가격이 떨어져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만주사변 후의 시장 확대로 맥주회사의 경영이 나아지고 총독부 재정의 안정화까지 가져온다. 총독부도 다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일본 릿쿄대학 경제학부 임채성 교수로, 일본어로 책을 써서 우리말로 번역 출간했다. 임 교수는 “근대성은 식민성과 엉키고 여전히 잠재되어 이미 우리의 것이 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일본 내지에서 식민지 조선으로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식민지 조선에서도 일본 내지로 영향을 미쳐 현대 일본의 식문화에도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책의 방향성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저자의 주요 연구 과제가 ‘일본 경제의 역사적 전개’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읽어야겠다.

이 책은 일제에 의한 ‘식(食)의 재편’이 어떻게 양국의 음식문화를 바꾸어 놓았는지를 조명하고, 식민지 통치에서 음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 준다. 쌀, 소, 홍삼, 우유, 사과, 명란젓, 소주, 맥주, 담배를 다룬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되어서 그런지 딱딱한 역사 연구서지만 대중서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우리가 지금 먹는 사과는 일본에서 온 농업 이민에 의해 국광, 홍옥 등의 서양 사과가 조선에 정착한 것이다. 우수한 품질의 조선 사과는 경상도와 가까운 서일본에 진출해 아오모리 사과와 경쟁한다. 나중에는 지역적으로 근접한 만주와 화북에서는 조선 사과가 아오모리 사과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섰다.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나쁘기만 한 게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조선과 일본 양 지역에 관세가 있었고 1921년이 되어서야 관세 철폐 조치가 실시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일본 음식문화의 동서격차가 조선이나 중국과의 거리와도 관계가 있다는 견해도 흥미롭다. 근대를 파니 부산이 자꾸 나온다. 부산을 통해 들어오고 나간 식재료가 양국의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 같다. 임채성 지음/임경택 옮김/돌베개/480쪽/3만 2000원.


<음식조선> 표지. <음식조선>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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