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워싱턴으로 간 코코넛

입력 : 2024-07-25 18: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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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나 음식은 인종차별에 사용되곤 한다. 유럽 축구장에서는 아시아계나 남미,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에게 바나나를 던지거나, 원숭이 소리를 내는 현상이 종종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김민재가 뛰었던 이탈리아 나폴리구단은 나이지리아 출신 공격수 빅터 오시멘을 코코넛에 빗대 “나는 코코넛이야”라는 틱톡 영상을 만들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야자수 열매인 코코넛(coconut)은 미국에서 주류 문화에 동화되려 애쓰는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계 사람을 비하하는 속어로 흔히 쓰인다. 껍질이 갈색인데 속은 새하얀 코코넛처럼 외모는 소수인종이지만, 내면은 백인과 같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의미다. 동양인은 겉은 노랗고 속은 흰 크림인 ‘트윙키’, 미국 원주민들은 겉은 빨갛고 안은 하얀 ‘사과’, 흑인은 검은 쿠키 안에 흰 크림이 들어있는 ‘오레오 쿠키’ 등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인종차별 문제가 가장 극심한 국가가 미국이다. 흑인은 물론이고, 아시아, 중남미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지난 5월에는 미국 LA에서 한인 교포인 양용 씨가 LA 경찰이 쏜 총에 억울하게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한인들과 아시아계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내가 양용이다’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미국 사회에 난데없이 코코넛이 등장해 화제다. 자메이카 출신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대선 주자로 나서면서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내 어머니는 ‘너희 젊은이들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너희들은 그냥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연설했다. 젊은 세대가 앞 세대와의 연결 속에 있으며 자신의 배경과 맥락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와 관련된 영상이 코코넛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SNS를 달구고 있다.

이로 인해 코코넛은 바이든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선 후보 사퇴 이후 급부상한 해리스 부통령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SNS에는 코코넛, 야자수 사진이나 ‘방금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진 것 같니’ 댓글, 해시태그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미국이 인종차별과 미국 우선주의라는 두꺼운 코코넛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을지, 아니면 컴컴한 코코넛 껍데기 안에 계속 쪼그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꿈을 찾으려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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